게토 스구루에 관한 소문은 아주 많았다. 흘러내린 앞머리, 동그랗게 묶인 장발, 양쪽 귓불에 커다랗게 박힌 귀걸이, 넓은 어깨에 타이트하게 맞춘 교복, 외관부터 소문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그가 걸레라는 이야기다. 치정 소문은 물론이고 1학년 때 있었던 농구부에서 선배 중 하나의 좆을 빨아줬다는 얘기는 거의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다. 중학생 때는 선생님과 잤다가 전근을 보냈다는 소리도 있었다. 전학생인 내가 들은 소문이 그 정도였다. 

그런 것치고 게토는 인기가 좋았다. 커다란 덩치에 비해 사근사근한 말투는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충분했다. 성적도 좋아서 선생님들도 편애했다. 청소시간에 굳이 심부름을 시켜 빼준다던가 쉬는 시간 질문에 유독 그를 오래 붙들었다. 대체로 그를 좋아했고 대체로 그를 재수 없어 했다. 나는 후자였다. 주위에 사람이 많은 만큼 그에 대한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소문 중 몇 개가 진실인지는 몰랐다. 

고죠 사토루는 게토 스구루와는 다른 의미로 다른 유명인이었다. 회색빛이 감도는 백발에 푸른 눈, 약시 때문에 쓴다고 하는 선글라스, 190이 넘는 키, 이미 외모만으로 충분히 눈에 띄었다. 등하교 때마다 외제차가 고죠를 태웠고 그 몸에 달려있는 것 중 교복을 빼면 모든 물건이 명품이었다. 지각은 예사에 학교에 와서 잠만 자도 성적은 늘 수석이었다. 그러나 그가 유명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싸가지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도 그 외모 때문에 말 한 번 걸어봤다가 욕만 처먹었다.

 

반면 게토는 끈질기게 고죠에게 달라붙었다. 아무도 게토가 왜 고죠에게 목을 매다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작작해.”

 

하고 고죠가 게토의 얼굴에 책상 위에 올려져있던 우유를 그대로 쏟아 부은 적이 있었다. 책상에 앉아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있던 게토는 가만히 그 우유를 다 맞았다. 아무 반격도 하지 않았다. 이건 소문이 아니라 내가 직접 본 광경이었다. 나는 그 때 게토의 대각선 뒷자리에 앉아있었다. 

게토의 친구 중 하나는 고죠의 멱살을 잡으려다 그 사나운 눈빛에 욕만 내뱉었다. 고죠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게토는 뺨에 흐르는 우유를 닦더니 화난 친구들을 말리고 화장실로 가서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왔다. 

 

“너 뭐 쟤한테 약점이라도 잡힌 거 있냐?”

“아니…그냥 내가 잘못한 거야.”

 

게토는 웃었다. 냄새 많이 나? 묻는데 우유 비린내가 내 자리까지 났다. 그 일은 계속 화자 되었다. 게토가 고죠의 여자친구를 건드렸다는 소문은 여기서 나왔다. 고죠에게 여자친구가 있는지 여부조차 다들 모르면서. 

게토는 그래도 고죠에게 꾸준히 달라붙었다. 꾸준히 밥을 같이 먹자고 고죠의 반에 가서 말을 걸었고 억지로 교과서를 빌려주고 하교 때는 자전거를 타고 고죠가 타고 가는 차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게토를 보면서 우유를 맞아 그의 까만 속눈썹에 매달린 흰 거품을 자주 생각했다. 

 

 

 

체육시간은 합동이 많았다. 이번에도 고죠의 반과 겹쳤다. 고죠는 체육복을 입고 나른하게 하품하면서 구석에 앉아 있었다. 게토는 몸풀기 용으로 친구들과 농구를 했다. 게토는 다른 반에도 친구가 많았다. 

반대편에서 한 게임을 끝내고 오니 어떤 여자애가 게토에게 수건을 건네고 있었다. 게토가 가볍게 인사를 하더니 그대로 고죠의 옆으로 달려갔다. 고죠의 팔을 가볍게 잡고 흔들었다. 그 애교스러운 행동을 고죠는 비웃더니 몸을 일으켜 굴러다니는 공 하나를 주워 골대에 넣었다. 게토는 그 공을 주워 고죠에게 던졌다. 고죠가 픽 웃더니 그 공을 잡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반으로 돌아가는데 게토가 없었다. 다음 수업 시간이 아슬아슬하게 되어서야 여전히 체육복을 입고 반으로 돌아왔다.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고죠와 둘이 뭘 했을 지 궁금했다. 옆 자리 애가 내 어깨를 치고 귓속말로 속삭였다. 게토 목에. 그 말을 듣고 시선을 옮겼다. 체육복 지퍼를 끝까지 올린 깃 사이, 목덜미가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게토는 수업 내내 혼나면서도 체육복을 벗지 않았다. 

 

 

 

하필이면 점심시간에 선생님이 심부름을 시켜서 애들을 먼저 보냈다. 교무실엔 나말고도 학생이 있었다. 고죠였다. 선생님한테 설교를 듣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벗지도 않고 듣는 둥 마는 둥 다리를 떠는 모습이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우리 담임은 자리에 없었다. 과제물을 갖다놓고 반으로 돌아가니 혼자 엎드려 있던 게토가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

 

나를 보고는 눈이 실망으로 바뀌었다.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태도가 꽤 무례하다는 걸 느꼈는지 머쓱하게 말을 붙여왔다. 밥 먹었어?

 

“아니, 아직. 심부름 다녀온다고”

“그래?”

“너는?”

“아, 나는 친구 기다려.”

“고죠라면 교무실에 있던데.”

“……”

 

내가 사토루 기다리는 거 어떻게 알았어? 특유의 의뭉한 웃음을 지으며 눈을 휘었다. 누굴 등신으로 아는 건지.

 

“고죠 얘기 길어질 것 같던데…”

“괜찮아.”

 

게토는 더 얘기하기 싫은지 다시 엎드렸다. 구석에서 도시락을 먹는 여자애들 목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렸다. 난 매점에서 빵 두 개를 샀다. 하나는 게토에게 줬다. 게토가 야끼소바빵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돈을 주려고 했지만 안 받았다. 고마워. 게토도 굳이 더 거부하지는 않았다. 다음엔 내가 살게. 그 간지러운 목소리가 기분이 나빴다. 고죠는 우리 반에 오지 않았고 게토도 내가 준 빵을 먹지 않았다.

 

 

기분 나쁜 일은 그 다음 날 일어났다. 오후 수업 하나를 끝낸 후 고죠가 우리 반 교실 문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순간 조용해졌다가 다시 웅성거렸다. 다들 게토를 보러 온 거려니 했다. 그런데 고죠는 그대로 걸어오더니 내 자리 앞에 섰다. 그리고는 내 책상 위에 만엔짜리 지폐를 올려놨다. 하얀 눈썹이 나를 보며 올라갔다.

 

“빵값”

 

빵값은 150엔이었다. 나 너한테 빵 산 적 없는데. 고죠는 내 말을 씹고 그대로 돌아갔다. 얼굴도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고죠 사토루는 사람 기분 씹창내는 것도 잘했다. 나는 만엔을 그대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친구가 고죠 사토루가 대체 왜 너한테 돈을 주냐고 물었다. 무시하고 이 일의 장본인을 봤다. 게토는 무표정으로 책상 밑에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복도에서 여자 두 명과 이야기하고 있는 게토가 보였다. 아직 그 빵 일이 기분이 나빠서 무시하고 가려는데 먼저 아는 척을 해왔다. 집에 가는 거야?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동아리. 무슨 웃긴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옆에 있던 갈색 머리 여자애가 게토의 팔을 잡아당겨 귓속말을 하고 키득거렸다. 게토는 내 쪽을 한 번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잘 가. 대체 무슨 말을 나누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쟤네랑 다 잤을까? 게토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화구를 챙겨 미술실에서 나왔다. 친구를 기다릴까 하다가 먼저 가기로 했다. 자전거장에는 게토가 있었다. 왜 이렇게 자주 마주치지. 갑자기 목이 간질거려서 침을 뱉었다. 생각해보니 같은 반이니 자주 마주치는 게 당연했다. 내가 너무 의식하는 거다.

게토는 바퀴에 걸린 열쇠를 풀고 있었다. 아까 그 여자애들은 없었다. 

 

“고죠는?”

“먼저 갔어.”

 

뭐가 잘 안 맞는지 자전거 열쇠를 계속 꽂았다 뺐다를 반복했다. 그 광경을 보기가 짜증나 열쇠를 뺏어서 열어줬다. 고마워. 전혀 고맙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너 되게 착한 거 같애.”

 

왠지 모르게 욕으로 들렸다. 아니 욕이 맞았다. 그걸 못 알아들을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나한테 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되는데. 뒷말은 재수 없었고. 자의식 과잉. 머릿속으로 생각한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게토는 내 말을 듣고 웃으면서 자전거 위에 올라탔다.

 

“고죠의 어디가 좋아?”

 

내 질문에 게토는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가는 눈이 커졌다가 다시 가늘어졌다. 딱히 대답을 바라고 물은 건 아니었다.

 

“잘생겼잖아.”

 

너무 당연한 대답에 할 말이 없어졌다. 확실히 고죠는 진짜 존나 잘생겼으니까. 그건 아무도 부정할 수 없었다. 게토가 갑자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미심쩍게 보고 있으니 손짓이 더 커져서 결국 얼굴을 가까이했다. 숨이 내 귓가에 닿았다. 좆도 커.

짜증이 확 나서 뒷걸음질 했더니 어깨를 맞은 게토가 휘청이는 자전거를 발로 지탱했다. 게토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농담이야.”

 

애초에 관심 같은 걸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시험기간이라 패밀리레스토랑에는 우리학교 교복이 많았다. 볼펜을 입으로 씹고 있으니 친구가 더럽다며 핀잔을 줬다.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앞자리 한 명이 말했다.

 

“게토랑 고죠, 사귀는 건가?”

“씨발 더러운 소리 좀 하지마.”

“아니, 게토는 걔랑 사귀잖아.”

 

체육시간에 수건을 건네준 애 이름이 나왔다. 둘이 사귄다고? 몰라. 나도 들었는데, 게토가 자전거에 걔 태우고 가는 거 봤다던데. 씨발, 뭐래. 자전거 가지고. 계속 쓸데없는 말이 오갔다. 사람 없는 데서 이딴 얘기하는 거 존나 찐따새끼들 같애. 틀린 말은 아닌 듯? 우리 찐따새끼 맞잖아. 듣기 싫어서 정색 빨고 말했는데 나오는 말이 더 가관이었다.

 

“근데 사실 게토한테 관심 있는 건 이새끼잖아.”

“미쳤냐?”

 

아니, 이새끼 맨날 게토만 보고 있잖아. 어깨를 밀치는 손이 기분 나빴다. 근데 더 기분 나쁜 건 그 말에 진짜로 할 말이 없다는 거. 근데 여기서 지랄하면 괜히 분위기 더 몰아갈까봐 입을 싸물 수밖에 없었다.

 

“개소리는 딴 데가서 쳐해.”

“하긴, 상대가 고죠면 가망이 없지.”

“맞다. 나 작년에 고죠랑 같은 반이었는데.”

 

고죠 그렇게 성격 안 좋은 건 아냐. 물건 같은 것도 잘 주워주고 말도 걸면 생각보다 잘 받아줘. 야, 어쩌라고. 내가 게토 스구루 빠니까 너도 고죠 사토루 빠라고? 아 좀 닥치고 그냥 들어봐. 아무튼 뭐 때문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뭐 고죠랑 얘기하다가… 뭔 얘기였지? 대충 왜 그 밴드 있잖아. 그 영화 ost 부른. 맞아. 거기 멤버 이름도 사토루잖아. 그래서 아는 척 좀 해봤는데, 사토루라고 부르니까 게토가 갑자기 나 존나 째려보는데… 그러다 바로 고죠 데리고 나갔어. 존나 이상하지 않냐?

 

“진심 너무 별 거 아닌 얘기라서 할 말이 없다.”

“아 그때 니네가 그새끼 눈빛을 봤어야 됐는데.”

 

그러니까 내 말은, 게토 관심 끌고 싶으면 고죠한테 가서 친한 척 해. 어그로 존나 잘 먹혀. 웃는 얼굴이 재수 없어서 냅킨을 이마에 던졌다. 이미 시험공부는 뒷전이었다. 오늘은 텄다. 그 다음에는 음료코너에서 누가 더 토 나오는 벌칙음료를 만드느냐로 시간이 다 갔다.

 

 

 

조석을 일으키는 힘을 조석력, 혹은 기조력이라고 합니다. 기조력은 만유인력과 원심력의 차이로 정의하는데… 선생님의 목소리는 너무 잠이 왔고 귀에 들어오는 내용은 전부 단어가 되어 흩어졌다. 밀물과 썰물을 뭘 그렇게 어렵게 설명하는 건지.

 

“사실 바다뿐만 아니라 육지에도 조석력은 작용해요. 이에 대한 변화 수준이 매우 작기 때문에 느끼지 못할 뿐이죠.”

 

육지의 밀물과 썰물. 내가 느끼지 못하고 있는 작용. 그 말을 듣고 문득 게토 쪽을 봤다. 게토는 몰래 휴대폰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또 고죠겠지. 적어도 둘의 조석 관계는 내가 느끼고 있었다.

 

 

방금 전의 지구과학 덕에 너무 잠이 와서 쉬는 시간에 잠깐 나왔다. 담배 하나 깔까말까 고민하는데 싸움소리가 들렸다. 야외 복도 옆 창고 쪽 풀숲이었다. 누가 싸우나? 발걸음이 그 쪽으로 가는데 이미 동그랗게 묶인 머리가 보였다. 게토였다. 키도 크고 머리 스타일까지 특이하니 너무 눈에 띄었다. 앞에는 그 사귄다고 들었던 여자애였다.

여자애 눈이 빨갰다. 치정은 귀찮은데. 뒤돌아 갈까, 구경할까, 고민했다. 흥미진진하긴 했다. 그 때 여자애가 게토 뺨을 때렸다. 게토는 순순히 맞아줬다. 고개가 꽤 세게 돌아갔다.

 

“미친새끼.”

 

여자애가 씩씩거리며 욕을 뱉고는 가버렸다. 게토는 잡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멋쩍어서 나도 도망가려는데 여자애가 날 발견한 게 먼저였다.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인상을 쓰고 가버렸다. 게토가 이쪽을 봤다. 어색하게 웃자 게토도 평범하게 웃었다. 모르는 척 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게토가 이쪽으로 성큼 왔다.

 

“못 볼 꼴 보여줘서 미안.”

“아냐, 때린 쪽이 잘 못한 거잖아.”

“내가 잘못한 게 맞을걸.”

 

고죠에게 우유를 맞았을 때와 비슷한 말이었다. 게토는 항상 자기 탓으로 돌렸다. 하긴, 진짜 게토 탓일지도 몰랐다. 별로 맞은 이유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자꾸 나한테 사토루 얘기를 해서, 내가 좀 심하게 말했어.”

“그… 말 안 해도 돼.”

 

진짜 궁금하지 않았다. 게토가 내 쪽을 보면서 웃었다. 한 쪽만 붉어진 뺨이 묘했다. 이상하게 너한테는 말 다 하게 돼.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게토의 말을 듣고 있으면 얘가 나한테서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다 주고 싶어진다.

 

“맞다. 네 친구들이 찾던데.”

“그래? 그럼 들어가자.”

“아… 나는 매점 좀 들렀다 가려고. 너 먼저 가.”

“왜, 그럼 나도 같이 가자. 나 이 꼴로 혼자 들어가면 민망해.”

 

응? 고개를 옆으로 까닥했다. 거짓말로 대충 자리를 벗어날 생각이었는데 게토가 내 어깨 위에 팔을 올리고 놔주질 않았다. 힘이 너무 세서 포기했다. 애초에 키도 덩치도 나보다 컸다. 솔직히 게토와 둘이 가는 매점은 거북했다. 그 때 그 빵값 일이 생각났다.

그런 내 찐따 같은 생각을 뒤로하고 게토는 혼자 초콜릿과 사탕 종류를 막 쓸었다. 단 거 좋아하나봐? 물었더니 대답이 가관이었다.

 

“사토루가 좋아해.”

 

혼자 들어가면 민망하다더니 게토는 고죠의 반에 들르겠다며 복도에서 나와 헤어졌다. 수업 종이 쳐도 게토는 반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 뭐 부탁 좀 해도 돼?”

 

엎드려 있는데 누가 나를 깨운다 했더니 눈앞에 있는 건 게토였다. 부탁? 굳이 나한테?

 

“이거 사토루 체육복인데, 네가 좀 갖다주라.”

 

심지어 고죠 사토루한테. 그 빵값 일을 정말 혼자 다 까먹은 건지, 아니면 무슨 벌칙게임 같은 건가? 호구 잡히기 싫어서 다시 엎드렸더니 게토가 내 팔을 잡고 흔들었다.


“…네 친구들한테 부탁하면 되잖아.”

“우리 친구 아냐?”

 

진짜 모르는 척 하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히죽, 웃었다.

 

“진짜 미안. 나 근데 교무실 가봐야 해서,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 사토루 다음 시간 체육인데.”

“……”

 

창가 뒤 쪽에 게토의 무리들을 흘깃 봤다. 엎드려 있는 애들 반, 신경 안 쓰는 애들 반이었다. 응? 부탁해. 결국 그 말을 들어주는 나는 호구가 맞았다.

고죠의 반은 한층 더 위였다. 게토가 아까 계속 입고 있었던 체육복 상의에서는 산뜻한 나무향이 났다. 게토의 냄새인지 아니면 고죠네 집 섬유유연제 향인지 알 수 없었다.

문을 노크해서 열자마자 엎드려 있는 고죠부터 보였다. 그 덩치에 백발이라 사실 못 찾을 수는 없었다. 굳이 아는 척하긴 거북해서 옆에 서있는 애한테 고죠한테 전해달라고 옷을 건넸다. 남자애는 꺼림칙한 표정으로 체육복을 받았지만 거절하진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대로 돌아가려는데 고죠의 몸이 일어나 있었다. 기분 탓인지 잠깐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더 엮이기 싫어서 얼른 자리를 벗어났다. 후회가 됐다. 대체 왜 이런 심부름을 했는지.

교실로 돌아오자 게토는 내 자리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무실 간다며? 아, 갔다왔어.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했다. 알고도 속은 거지만 기분은 나빴다.

 

“사토루가 뭐래?”

“…그냥 걔네 반 애한테 전달하고 왔는데.”

“뭐야. 인사라도 하지. 나 사토루한테 네 얘기 많이 했는데.”

“무슨 얘기?”

“그냥, 착하다구.”

 

킥킥 거리더니 다시 자기 자리로 들어가서 앉았다. 옆자리 친구가 말했다. 너 대체 무슨 어그로를 끈 거냐? 나도 그 답을 알고 싶었다.

 

 

 

결국 아까 일 때문에 짜증나서 한 대 피우고 있는데 눈에 익은 형체가 보였다. 고죠였다. 오백미터 뒤에서도 고죠의 형체는 알아볼 수 있었다. 좆됐네. 고죠가 나한테 관심이 있을 거라곤 생각 하지 않지만 그래도 저 새끼가 꼰지르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이미 한 번 걸린 적이 있었다. 장초를 바로 바닥에 버렸는데 고죠가 그걸 주워다 나한테 건넸다. 무슨 꿍꿍이지?

 

“나도 하나 줄래?”

 

멘솔 피워? 고죠가 비웃듯이 말했다. 진짜 같은 말을 해도 얘는 꼭 이런 식이었다. 싫으면 말든지. 익숙하게 불을 붙이더니 제법 자연스럽게 피웠다. 그리고는 내 얼굴에 연기를 후 불었다.

 

“미쳤냐?”

 

왜 시비야? 고죠가 웃었다. 역겨운 연기 속에서도 고죠의 얼굴은 반반했다. 선글라스로 눈이 가려져 있어도 그랬다. 너무 반반해서 더 짜증이 났다.

 

“있잖아. 스구루가 너한테 치대는 거. 신경 쓰여?”

“뭐?”

“스구루. 신경 쓰이냐고.”

“무슨 소리야. 사람 알아듣게 처말해.”

“궁금하면 내가 말해줄게. 스구루 허벅지 안쪽에 점 있는데 거기 빨아주면 좋아해.”

 

단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내가 주면 먹어. 내가 주는 건 다 먹어. 내가 싼 것도 먹고. 두 손가락을 벌리더니 그 사이에서 혀를 내밀었다.

 

“뒤로 하는 거 좋아하고 끝나면 꼭 입 안에 넣고 빠는 습관 있고 또 뭐 있지? 아, 갈 때 목 눌러주면 완전 질질 싸는데.”

“……”

“질투도 존나 많다? 그냥 자기네 반에 여자애 하나랑 얘기 좀 했다고 갑자기 급발진해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너도 딱 그 정도라고.”

“……”

“존나 나쁜년이지? 그러니까 더 엮이지말고 더 궁금하면 그냥 나한테 물어봐.”

“……”

“신경 끄라고.”

 

담배 고마워. 다시 한 모금 연기를 뱉는데 이번엔 기침을 했다. 이런 좆같은 거 왜 하나 몰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예비종이 쳤다. 고죠의 뒷모습이 작아지는 동안 나는 그 자리에 계속 서있었다. 둘 사이의 조석 현상에서 침몰하는 배가 된 기분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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