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세드릭 디고리가 결혼한다는 소식이 영국의 온 마법세계에 퍼지는 데에는 단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살아남은 소년이 평생의 반려로 계약한 이가 누군지에 대한 관심이 첫째, 그 이가 바로 트리위저드의 마지막 시합에서 볼드모트로부터 해리와 함께 탈출한 전설적인 후플푸프의 미남자라는 것이 둘째, 그 이후로 쭉 두 사람이 비밀 리에 연인 관계를 유지해왔다는─주간마녀지가 예언자일보보다 먼저 보도한 유일한 특종이었다─소식이 셋째였다. 무려 살아남은 소년, 구원자의 이 세 가지 로맨스는 마치 하나의 성물과도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던 두 사람의 멋쩍고도 아름다운 로맨스를 '사랑의 성물'이라고 불렀다.


리타 스키터는 자신이 만들어낸 이 카피가 공공연히 쓰이는 것을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해리는 분한 얼굴을 하면서도 뜻밖에 이 유치한 기사제목에 대해서는 큰 태클을 걸지는 않았다. 


사실은 두 뺨이 벌게지기까지 한 것을 보며 론이 킥킥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는 자신이 먼저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실을 근거로 조언이라도 해줄 것처럼 굴었지만, 해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론의 조언 중 '사랑'에 관련된 것이라면 그것은… 별로 쓸 데가 없다. 적어도 벌써 배가 몰라보게 불러온 헤르미온느가 저 멀리서 쿵쿵대며 걸어오는 것만 봐도 그랬다.


 "로널드 빌리우스 위즐리!"


깔끔한 묶은 머리와 둥근 배를 가려주는 커다란 자켓을 입은 헤르미온느가 엉엉대며 우는 로즈를 가리키며 그의 등을 찰싹 내리쳤다. 어서 가서 우리 아이부터 달래지 못해! 늘 그렇듯 론은 변명할 시간조차 없었다. 헤르미온느는 이미 론이 로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해리의 수제 장난감을 실수로 망가뜨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내가 못 살아. 로즈가 저걸 얼마나 애지중지했는데."

 "난 괜찮아, 헤르미온느. 또 사주면 되지."

 "해리.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절대 그런 식으로 아이를 키워서는 안 돼."


만일 너희 부부가 누군가를 입양한다면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남아있던 론의 논알콜 칵테일을 들이켰다. "이거 알코올 없는 거 맞지?" 그녀가 빨리도 물었다. 해리는 당연한 사실에 웃으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헤르미온느의 임신 이후로 론은 술의 'ㅅ'자도 입에 대지 않고 있었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둘 다 남자여서."

 "만약 입양하게 된다면 꼭 알려줘. 우리 집 서고에는 네가 보고도 남을 양의 육아서적이 잔뜩 구비되어 있어."


그건 필시 론이 모르는 비밀 서고까지도 포함이겠지. 어쩐지 점점 론을 닮아가는 듯한 헤르미온느의 속삭임에 해리가 미소지었다. 얼마든지.


 "그건 그렇고." 잔에서 입을 뗀 그녀가 별안간 몸을 숙였다. "이번 결혼식에 '그'도 오는 거야?"


순간 멈칫한 해리가 대신 남은 잔을 들이키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그렇지만 청첩장을 보냈잖아."

 "그렇지."


이상하게도 한숨이 새어나왔다. 헤르미온느는 맞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포터와 디고리의 결혼식에 오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 역시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해리는 그제야 그 둘 모두가 자신의 의지라는 사실에 조금씩 후회하기 시작했다. 역시 청첩장을 보내는 게 아니었나.


 "난… 그저 예의로 보냈을 뿐이야. 어쨌든 그는 위즌가모트 재판 이후로 내게 크리스마스마다 빼놓지 않고 카드를 보내고 있으니까."

 "뭐. 생각이 있다면 설마 세드릭이 반지를 끼워주는 도중에 쳐들어오진 않겠지."


어느새 다가온 건지 헤르미온느의 곁에 자리잡은 론이 한마디 던졌다. 그 즉시 와닿는 헤르미온느의 날카로운 시선에 눈을 굴린 론은 해리 쪽으로는 시선도 두지 못한 채로 한참을 장난감을 '실수'로 망가뜨린 일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나 참. 마법주문이 안 통하는 마법 장난감이 어디 있어? 론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헤르미온느의 빈자리를 꿰차며 이건 형들에게 따져야 할 일이라고 툴툴댔다.


 "어쨌든 친구, 난 네가 말포이에게 초대장을 보냈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아. 너 정말 그를 네 결혼식에 초대라도 할 셈이었던 거야?"

 "청첩장이라는 건 보통 그런 의미로 보내."

 "오. 이젠 헤르미온느처럼 말하겠다 이거군."

 "하지만 론, 말포이는 이제 호그와트 시절의 그 녀석이 아니잖아."


완전히 달라진 건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론의 말처럼 성대한 어느 한 순간의 분위기를 깨고 '그 면사포는 흉터를 가리려고 쓴 건가, 포터?' 따위의 말을 지껄이며 쓰지도 않은 면사포를 뒤집어쓴 흉내나 내진 않으리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니. 해리는 믿고 싶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라우리만큼 확신할 수 있는 그의 조용하고 단정한 모습을 상상했다.


의례적인 말을 쥐어짜는 게 그리도 힘들어서 몇 번이나 반송을 고민했던 말포이의 크리스마스 카드가 떠올랐다. 'Dear Potter' , 고분고분하기 짝이 없는 이탤릭체가 어찌나 어색하던지. 마치 금방이라도 백금발의 오만한 소년이 튀어나와 포터! 하고 소리치며 그 얌전한 글씨를 정정해줄 것만 같았다.


 "난 그가 호그와트 시절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믿어."


어떤 부분은 말이지. 론이 아랫입술을 거칠게 깨물었다.


 "얼마 전에 길 가다 말포이한테 새똥이라도 맞은 거야?"

 "그 녀석이 한 짓을 떠올리면 그건 아주 준수한 축에 속하지."

 "그건 나도 인정해."


해리가 빠르게 대꾸했다.


 "최소한 드레이코─블러디─말포이가 널 대하는 눈빛이라던가 몸짓 같은 건 말이야."

 "……음."


이번에는 입술을 길게 앙다무는 것밖엔 할 수가 없었다. 론이 불만스럽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직도 모르겠어, 해리? 그 자식은 널 보는 분위기만큼은 예전과 다를 게 없다고."

 "그렇다기엔 걘 확실히 좀 과하게 정중해진-"

 "여전히 지독하게 안달난 눈으로 널 쳐다보잖아!"


해리가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본 론이 목소리를 낮추며 사과했다. "미안." 오, 그래. 몹시 미안해야 할 일이지. 해리는 마치 드레이코가 그에게 어떤 억눌린 깊은 감정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마냥 설명하는 론의 묘사를 잠자코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괴롭히지 못해 안달인 눈이겠지." 


물론 네 말이 맞다면. 냉정한 어조로 해리가 덧붙였다.


 "그래, 해리. 미안하다니까. 확실히 방금 한 말은 좀 이상했어." 론이 상상하기도 싫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때마침 자리로 돌아온 헤르미온느가 론의 어깨를 짚으며 시간이 됐으니 어서 출발할 것을 재촉했다. 두 사람은 오늘 로즈와 함께 호그와트를 방문하기로 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해리는 시계를 확인하며 깜짝 놀랐다.


 "잘 다녀와. 헤르미온느, 론."


요 근래 오래도록 보지 못했던 두 사람과의 만남이 무의식중에도 매우 그리웠던 것이 분명했다.


 "해리 너도 갈래? 그렇지 않아도 로즈가 널 보고 싶어 해."

 "세드릭과 가구를 보러가야 해서, 미안."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헤르미온느가 싱긋 웃으며 고갤 저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불러. 길고도 긴 결혼준비를 먼저 끝마친 그녀가 거의 여유롭기까지 한 말투로 상냥하게 해리의 어깨를 한 번 감싸안았다. 론은 다정하지만 가벼운 손길로 그의 날갯죽지 부근을 한 번 툭 쳤고, 여느 때처럼 해리를 두고 먼저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비슷한 순간마다 들었던 묘한 감정에 하는 수 없이 새어나오는 한숨을 막을 순 없었다.


메리지 블루가 바로 이런 걸까? 그는 론과 헤르미온느가 번갈아가며 한 번씩 몰래 자신에게 해왔던 고민상담을 떠올렸다. 그땐 확실히… 행복이나 후련함, 씁쓸함과는 또 다른 감정이 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뭔가 달랐다. 분명히, 무언가 달랐다.







블랙가의 가계도와 먼지를 쓸어내 깔끔하지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온갖 고풍스러운 가구들, 골동품, 마지막으로 늘 해리의 배가 고프진 않은지 확인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인 크리처를 제외하면 그리몰드 12번지는 텅 비어있었다. 무슨 말이냐고? 그러니까 그곳은, '조금도' 비어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가득했다. 해리는 제 앞으로 날아온 대문짝만한 헤드라인─해리 포터와 세드릭 디고리가 나눠낀 사랑의 성물은 어떤 색?─을 흘깃 보고는 이내 소파에 드러누웠다. 어쩐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방금도 론과 헤르미온느를 보낸 후 머지않아 사랑하는 연인의 얼굴을 보고 오는 길이었으나, 가구를 고르는 데에 지나치게 심혈을 기울인 나머지 온 기력이 빠진 듯했다-라고 하기에는…


해리가 작게 한숨지었다. 그는 확실히 요 며칠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오후 내내 가구를 보는 데에는 집중도 못했다. 론조차 혀를 찬 디자인 감각 탓이기도 했고, 게다가 그의 아버지 에이머스 디고리는 얼마 전 두 사람이 서로 교환한 약혼반지에 대한 예언자일보의 기사가 얼마나 정교하고 과장되었는지에 대한 열띤 토론으로 정신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가구는 거의 못 고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편으로 해리는 어떤 가구를 들이든 별로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버킹엄 궁전의 캐노피 침대를 공수해온다고 하더라도 함께 첫날밤을 보내는 것이 트롤이라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크리처, 오늘 온 편지 없어?"

 "아. 해리 주인님!"


나지막한 부름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번쩍 튀어오른 크리처가 부엌 쪽에서 한 뭉텅이의 편지를 갖고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조금은 피곤한 기색의 그가 편지를 건네받자 커다란 귀가 팔랑거렸다.


 "한 장 뿐이네."


작게 중얼인 해리가 내용물을 확인하기 위해 자세를 고쳐앉았다. 그러나 그도 잠시, 봉투에 찍힌 스탬프의 인장을 보자마자 굳고 말았다.


 "주인님?"


의아하다는 듯 되물은 크리처가 주변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크리처, 나 차 한 잔만 끓여다줄래? 별안간 편지봉투를 바라보고 있던 해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였다.



Dear Potter


포터. 소식 들었어.

내게 청첩장을 보낼 줄은 몰랐어. 바로 답장하지 못한 건 미안, 뭐라고 답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좀 시간이 걸렸던 것뿐이야.

안타깝지만 참석은 곤란하게 됐어. 그날은 일이 있어 영국에 없을 예정이야. 언제나 그렇듯, 모든 하객의 가능성을 신경쓸 줄 모르는 네 아둔함 탓이라고 해두지.


결혼 축하해. 


Draco Malfoy



이상한 일이었다. 편지를 다 읽자마자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듯한 기분을 무어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 형언키 힘든 얼굴로 멍하니 편지 속 내용을 바라보던 해리가 마른 입술을 축였다. 말포이는 오지 못한다.


드레이코 말포이는 해리 포터의 결혼식에 오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정말이지 아주 지극하리만큼 당연한 사실일지도 모른다. 호그와트를 다녔던 그 누구도, 혹은 드레이코와 해리를 아는 그 어떤 이도 둘 중 하나가 기쁜 날에 나머지 다른 하나가 친히 박수쳐주고자 행차할 일은 없다고 생각할 테니. 게다가 해리가 먼저 더없는 행복을 맞이하는 날은 더더욱 그럴 터였다. 사실 해리는 오가는 의심의 줄다리기 속에서 청첩장을 보내던 순간조차도 자신이 한 번도 드레이코의 방문을 기대한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상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알고 있었으면서, 그가 오지 않을 거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어째서 이런 말 못할 기분이 드는 걸까? 스스로를 침범하는 감정을 허용할 수 없으면서도 해리는 한동안 못 박힌 듯 그렇게 자리에 앉아있었다.


결혼 축하해. 


그저 마지막 문구만이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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