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달이 뜬 밤이었다. 저 달도 금방 구름에 먹히겠지. 흰 달보다 흰 도자기에 뼈와 잿가루를 담고서 집행자는 발을 움직였다.


어제 또 하나의 생명이 끝을 맞이했다. 전염병의 가장 아름다운 끝은 안락사였으니, 아이는 집행자가 제 팔다리가 녹아내리기 전에 자신을 끝내주길 원했다.


어제 또 하나의 시신을 불에 태웠다. 전염병을 근절하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었으니, 아이는 집행자가 제 몸을 다른 시신들과 함께 구덩이에 파묻지 않길 바랬다.


집행자는, 흰 달보다 흰 도자기에 뼈와 잿가루를 담고서 발을 움직였다. 집행자의 주머니에서 낡은 MP3가 늙고 우울한 장송곡을 불렀다. 


집행자는 걸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울었다. 그는 양 발이 없는 남자였다. 남자는 집행자에게, 아이가 바다가 보이는 곳에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상이 변하기 전에, 아이가 바다를 좋아했고 했다.


집행자는 걸었다. 흰 달보다도 흰 도자기에 뼈와 잿가루를 담고서. 흰 달이 구름에 끝끝내 먹히고, 바람이 불었다. 집행자의 뺨을 바람이 때렸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이 집행자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이윽고 비가 내렸다.


철썩 철썩, 바다파도소리가 들렸다. 집행자는 신발을 벗었고, 장송곡은 바다의 소음에 묻혔다. 집행자는 모래를 밟고, 파도를 헤쳤다. 발목을 적시고, 무릎을 적시고, 허리를 적시고 나서야 집행자는 멈췄다. 아, 이별을 고하기엔 오늘의 날씨가 너무 궂었다. 집행자는 낡은 라이타와 향을 꺼내어 불을 붙였다. 궂은 날씨에도 향은 타올랐다. 향이 타올랐다. 집행자는 흰 달보다 흰 도자기에서, 한 아이의 흔적을 꺼냈다. 바람이 불었다. 이별을 고하기엔 오늘의 날씨가 너무 궂었다. 어린 아이를 배웅하기엔 궂은 날씨였다. 하지만 혼을 가둘 수는 없을 것이기에, 집행자는 가루를 바람에 날렸다. 철썩 철썩, 바다파도의 소리가 들린다. 집행자는 오늘의 날씨가 아름답길 바랬다. 오늘의 날씨는 너무 궂었다. 


하지만 눈물을 감추기엔 좋은 날씨일지도 몰라.


지구가 망해도 밥은 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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