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Ready for the floor_w. 제철망개



“정국이 나랑 곡 작업하기로 했어.”

“….”



정국이 아니, 이안은 남준형과 콜라보 성사에 대해 연락을 해왔고 아주 짧게나마 내 소식을 물었다고 했다. 오죽 답답하면, 연락을 했을까. 몇 번 본 적도 없는 남준형한테 연락하기가 얼마나 껄끄러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준형을 통해 내 소식을 물었다는 게 좀 당황스러웠다. 내 소식이야, 검색만 하면 산지사방에 뜨는 게 내 스케줄이고 내 개인사인데. 내가 따로 연락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남준형을 보냈다. 아무렇게나 옷을 벗어 던지고 폰을 켜서 ‘이안’을 검색했다. TV에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이안은 벌써 올해 가장 기대되는 싱어송라이터로 주목을 받고 있었고 다른 뮤지션들과 계획되어 있는 콜라보만도 여러 건이었다. 게다가 나와 남준형이 출연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여자MC와 핑크빛 기류가 돈다는 찌라시에 정확하지 않은 데이트 목격담들까지 무수하게 떠올랐다. 진짜인지 뭔지는 알 수 없어도 과연 정국이는 어떤 기분일지, 그게 궁금했다.




억지로 덤덤한 척 하는 통화라면 이미 두 어 차례 주고받았다. 더 이상 피해서 될 일도 아닌 것 같아서 정국이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기다렸다는 듯 전화가 걸려왔다.


“….”

「형….」

“남준형이랑 콜라보 하는 거, 들었어. 축하해.”

「…고마워요.」



무슨 말을 하려했더라. 축하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곡 기대할게.”

「형, 혹시….」

“…뭐.”

「기사… 아닌 거 알죠?」

“…넌 아니어도, 상관없는 거 알잖아.”


유치했던 거, 안다. 그런데 그때와 뒤바뀐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해서 전화를 끊었다. 정국이는 내 말이 따끔했을 거다. 사실은 좀 그러기를 바랐다. 내 말은 들어주지도 않는 네가, 그때는 얼마나 밉고 야속했는지.




*




남준형은 내가 선택한 연애에 대해 잔소리를 한다거나 지나치게 간섭을 하는 일은 없었다. 그냥 정말 걱정, 어린 철부지 같은 동생이 하는 짓이 스케줄에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그래서 더 겁도 없이, 시간만 생기면 정국이를 만나러 갔다. 새벽이슬을 맞으며 정국이한테 달려가 밤새 뒹굴고 해가 밝을 쯤 숙소로 돌아오면 남준형은 어김없이 거실에 앉아 책을 읽거나 가사를 쓰고 있었다. 스케줄 까지 시간이 얼마 남았으니 그 동안이라도 좀 자라고. 형은 정말 딱 그 정도만 간섭했다.

영 내키지 않는다는 정국이를 끌고 나와 남준형과 셋이서 고기를 먹으러 간 적도 있었다. 정국이도 연습생 생활을 몇 년 했었으니 남준형도 정국이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다. 고기를 먹고 코인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하는데 남준형은 ‘아깝다’ 소리를 정말 백번도 넘게 했던 것 같다. 거 봐. 남준형도 아깝다잖아. 지금이라도 생각있으면 우리 회사 대표님한테 얘기해 보겠다는 남준형의 권유를 정국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 ‘아이돌은 안 해요’ 라고.

대놓고 ‘너희 사귀는 거 맞아?’ 같은 질문은 없었다. 그렇지만 남준형은 그 시간동안 충분히 우리 사이를 이해했고, 내가 스케줄 때문에 바쁠 때는 보기가 어렵더라도 이해해 달라는 말만 정국이에게 전했다. 정국이도 고개를 끄덕거려 보였다.




사달이 난 건 우리가 3사 음악방송의 1위를 찍을 정도의 기염을 토했을 무렵이었다. 신규 팬의 유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멤버 개인만 쫓아다니거나 개인정보를 사고파는 악질적인 집단이 판을 쳤다. 아무리 막아도 소용이 없었다. 믿었던 스탭들 중 몇 명은 사생팬이 갖다 바치는 쿠폰이나 상품권에 우리의 비공식 일정과 항공 정보를 팔아 넘겼고 멤버들의 휴대전화번호를 비롯한 각종 개인정보는 사생팬들 사이에서 공공재가 되었다. 도려내도, 도려내도 요만큼의 포자라도 남으면 다시 자라나는 독버섯처럼 사그라들 줄 몰랐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는 일이 많아졌고 잠깐 밖에 나가 개인적인 일이라도 볼라치면 ‘지민아 뭐해?’ 라든지 ‘지민이 그 옷 좋아하나보다, 자주 입네.’ 같은 사생들의 문자가 어김없이 왔다. 그 때문에 정국이의 방에 가는 것도 어려워졌다. 이미 정국이가 내 오래된 친구라는 건 팬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퍼진 사실이었지만 무슨 방향으로든 괜한 여지를 남길까봐 겁이 났다.

회사에서는 팬덤 내 물갈이가 필요하다다는 얘기가 나왔다. 가장 편한 방법은 연애 찌라시였고 희생양으로 선택된 것은 그 중에서도 악성팬이 가장 많은 나였다. 데이트하는 장면이 목격되면 삽시간에 퍼질 것이고 아이돌의 연애를 인정하지 않는 악성팬이라면 자연스럽게 떨어져나갈 것이라는 시나리오였다.


- 형, 저 팬 다 떨어지면 어떡해요?

- 후…, 그러기야 하겠냐.

- 상대 누군데요.

- 걔, 저번 시상식 때 잠깐 스쳤다고 난리 났었잖아.


물물교환 같은 방식이었다. 우리는 팬덤을 정화시킬 사건이 필요했고, 그쪽은 찌라시라도 엮여서 실검이든 뭐든 입에 오르내릴 만한 사건이 필요했다. 같은 계열사의 회사끼리, 각 팀에서 차출된 희생양끼리 그럴듯한 상황을 짰고 익명사이트부터 찌라시를 흘렸다. 나는 우선 정국이를 안심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사생팬들의 감시가 느슨했던 날, 택시를 잡아타고 미친 듯이 정국이 방으로 달렸다. 정국이는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이렇게 찾아와도 되는 거냐고, 마스크를 잡아 빼고 헉헉 거리는 나를 꼭 안고 방에는 불도 켜지 않았다.


- 정국아….

- 형, 이거 멜로디 괜찮죠?

- 응…, 근데, 너 무슨 일 있어도 내 말만 들어야 돼.

- 나 형 말 다 들었는데?

- 응, 앞으로도 그래야 된다구.

- …무슨 일 있어요?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지 골치가 아팠다. 흐려진 팬덤, 정화의 필요성, 극단적인 선택.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정국이가 이해해줄지 난감했다. 내가 더듬더듬 풀어놓는 얘기를 들으면서 정국이는 동그랗게 토끼눈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이 잘 안되더라도, 만나기가 좀 어렵더라도 나를 믿어달라고만 했다. 정국이는 얼굴만은 천진하게 ‘오케이’ 하고는 혀를 꺼내서 내 입술을 슬쩍 핥았다. 함께 할 수 있는 고작 30분의 시간동안 우리는 참 깊고 진하고 빠르게 절정을 맛봤다.



그 주 주말, 음악방송 스케줄에는 순서에 없던 팀이 끼어있었다. 나와 같은 희생양이 소속된 걸그룹이었다. 1위 트로피를 받고 남준형이 소감을 발표할 때, 나는 뒤에서 n과 눈빛을 몇 번 주고받았다. 그쪽도 이미 눈치를 채고 내 쪽을 흘낏거렸다. 녹화를 끝내고 연습실로 돌아오자마자 sns부터 살폈다. 내가 n쪽을 보며 눈을 깜빡거린 컷이 절묘하게 잘려 여기저기 올라와 있었다.


‘하 진짜, 찌라시 뜬 거 안 믿고 있었는데 이정도면 빼박.’

‘연애는 할 수 있어. 근데 팬한테 예의는 좀 지키자.’

‘네가 지금 연애할 때야? 쇼케이스부터 너네 먹여 살린 팬들 생각은 안 해?’

‘저건 팬들 뿐만이 아니라 팀 전체에 민폐야.’



손이 벌벌 떨려서 쥐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 했다. 변기 위에 앉아 허리를 구부려 허벅지 사이로 머리를 넣고 몇 십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무대를 하는 도중에 실수를 하거나 예능에서 말실수를 했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가슴이 찌르르했다. 가파르게 뛰던 심장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고 크게 숨을 내쉬며 정국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국이는 변함없이 밝은 목소리였다.



- 형, 1위 축하해요.

- …미안해, 오늘 가고 싶었는데 바로 연습실 와야 해서.

- 괜찮아요, 형 피곤하니까.

- 우리 못 본지 3주 넘었다, 그치.

- 네. 근데 형, 괜찮아요?



오히려 내 걱정을 하는 정국이에게 난 괜찮다고, 억지로 목소리를 높여서 대답했다. 연습이 끝나고 숙소로 가면서 다음 일정을 받았다. 데이트 장면을 일부러 연출하는 노골적인 낚시였다.



며칠 후 예정대로 여자 아이돌 n과 약속된 장소에서 만났다. 누가 봐도 비밀연애를 하는 아이돌인 것처럼 어두운 색의 옷과 볼캡을 눌러썼다. 마스크를 쓴 채 말없이 사람이 거의 없는 공원 한 구석을 걷다가 매니저형의 개인 차에 올라탔다. 10분이면 사생들에게 충분히 노출되었을 것이다. 매니저형은 차에서 내려 밖에서 담배를 피웠고 짙은 선팅을 가림막으로 n과 나는 조심히 말을 꺼냈다.


- 시상식 때 미안.

- …뭐가?

- 부딪친 거 때문에, 악플 많이 달렸던 거….

- 아, 괜찮아…. 근데 너 여친 없어?

- …없는데, 넌?

- 나 있어…. @@@ 알아? 거기 리드보컬….

- 아, p가 너 남친이야? …속상하겠다.

- 미리 얘기했는데, 나라도 떠야 된다구 하더라…. 우린 아예 찌라시도 없어, 헤헤….


운전석으로 돌아온 매니저형 덕에 대화는 끊겼고 예정대로 n을 숙소에 내려주고 나도 회사로 돌아왔다. sns에는 어둠 속에서 밝기를 잔뜩 올린 내 뒷모습과 n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이 깔리기 시작했고 앨범을 부수고 화보를 찢어놓은 사진과 함께 ‘연애질 할 거면 아이돌 하지 말아야지, 지금 뭐하는 짓거리야? 키워준 은혜를 이렇게 갚냐?’ 하며 탈덕을 알리는 멘션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무섭고 겁이 났다. 이게 돌이킬 수 없는 짓이면, 독이 되는 짓이면 어떡하지. 정국이가 알면 뭐라고 설명하지. 거실의 소파에 앉아 초조하게 손톱을 뜯는 나를 위로해 주는 건 남준형 밖에 없었다. 모두를 기만하는 행위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온 나에게 남준형은 ‘수고했다. 얼른 자.’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다음 날 아침은 더 가관이었다. 어둠 속에서 찍힌 사진은 밤새도록 퍼져 포털사이트의 메인에 걸리고 음악방송에서 눈빛을 주고받은 사진까지 더해져 추측성 기사로 온통 도배되어 있었다. 물론 회사의 주도로 만들어진 상황이었지만 나는 겁이 나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걸 억지로 참았다. 숙소 앞은 깨진 CD와 찢겨진 포스터가 나뒹굴고 있었고 회사는 사실 확인을 위한 팬들과 언론사들의 전화로 업무가 마비 될 지경이었다.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한 거지만 정말 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뿐이었는지, 이게 최선이었는지 누구에게 묻고 싶어도 그럴 사람이 없었다.


- 지민아. 밥부터 먹자.

- 형…, 어떡해요….

- 괜찮을 거야. 이제 수습 들어간 거 같더라.


벌벌 떨고만 있는 나를 석진형이 부축해서 일으켰다.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는 것인지,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만 굴려왔던 머리에 늦은 제동이 걸렸다.

나와 n은 데뷔 전부터 알던 사이이며 그저 친구로서 잠시 만났을 뿐, 그 외에 다른 이해관계는 없다는 게 회사에서 내놓은 입장이었다. 농락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문장이었다. 함께 연극을 했던 n은 우리 쪽 팬들로부터 노골적인 악플과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지만 n의 팀은 전보다 방송에 출연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활동기를 마무리 할 때쯤 터뜨린 거라 수익에는 큰 타격이 없었다. 기획팀장은 팬들이 요란하게 탈덕하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또 무뎌질 일이고,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다.


폰으로 악의적인 문자가 너무 많이 와서 한동안 폰을 꺼버렸다. 정국이가 걱정됐지만 내 말만 듣겠다고 고개를 끄덕끄덕 해보이던 게 아른거렸다.









***




아니 저기요.. 눈덩이를 왜 줘....?ㅋㅋㅋㅋㅋ 미쳨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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