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빨다가요!”

퀴퀴한 특유의 냄새가 가득찬 복도. 쿵쿵, 거리는 음악 소리가 희미하게 묻어나는 공기 속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그 부름을 무시하며 걸음을 한 발자국 떼기가 무섭게 또 다시 경박스런 외침이 발목을 휘어잡았다.

“서경이 형! 빨다 가라니까!”

저를 콕 짚어 부르는 소리에 결국 주서경이 걸음을 멈춘다. 고개만 돌려 확인하니 히죽이죽 웃는 면상이 보였다. 성큼성큼 가까워지는 걸음걸이에서 질 나쁘게 취한 자 특유의 나른함이 가득했다.

“형, 진짜 오랜만에 여기 온 거 아니에요? 왜 우리 룸 안 들러요?”

순식간에 가까워진 상대가 서경에게 친근한 척, 몸을 들이댄다.

“오늘 우리 룸에 걔 있어, 걔. 그, 있잖아. 무슨 영화에서 첫사랑 어쩌고로 나와서 요새 한창 잘 나가는 걔. 생긴 건 청순파인데, 존나 잘 놀아요. 위로도 아래로도 기가 막히게, 아주 그냥. 응?”

초점이 살짝 엇나간 눈을 한 상대가 손가락을 움직여 저속한 손동작을 내보였다. 하지만 서경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내 손을 움직이던 걸 멈추고 그를 훑어보았다.

“근데 형은, 여기 오면서 뭘 그렇게 차려 입었어…?”

존나 꼴리게. 음험한 시선이 서경의 머리끝부터 발끝을 샅샅이 핥았다. 180은 족히 넘기는 신장, 빈틈없이 차려입은 슈트로 인해 슬림하게 보이는 늘씬한 몸. 신경질적으로 치켜 올라간 날카로운 눈매, 물방울이 고일 것처럼 길고 촘촘한 속눈썹,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 손끝으로 문지르면 색이 고스란히 묻어날 것 같은 붉은 입술. 아, 존나 꼴린다, 형. 진짜.

“야.”

약에 취해 횡설수설하던 이를 보며 서경이 픽 웃었다.

“너 이름 뭐냐.”

서경의 그 물음에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아, 형. 우리 몇 번 같은 방도 썼는데. 그때 이름 다 말했는데. 웅웅거리는 불분명한 중얼거림 사이로 이윽고 왈왈 짖던 개새끼의 이름이 들렸다.

“이성우요. 저, 윤화 건설…….”
“오늘부터, 이성우 말고, 이개새끼 해.”

이어지는 말을 싹뚝 잘라낸 서경이 한층 더 화사한 웃음을 흘렸다. 그 눈웃음에 잠시 넋 나갔던 남자가 그게 무슨, 이라며 어눌하게 말을 하던 그때.

“아아아아아악!!!”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고통으로 일그러진 절규가 복도를 뒤흔들었다.

“악! 아아악!”

명치를 팔꿈치로 얻어맞은 이성우가 침을 줄줄 흘리며 바닥을 기었다. 서경은 느긋하게 손을 뻗어 개털이나 다름없는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나랑 몇 번 같은 룸 써봤다는 이 개새끼 씨. 나는 오늘 여기 사람 만나러 왔거든. ”
“흐으, 으, 으…….”

머리칼을 움켜쥐는 하얀 손등 위로 푸른 혈관이 두드러졌다. 이성우가 한층 더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런데 오자마자 기분이 잡치네? 지저분하게 노는 너 같은 개새끼가 나한테 왜 치대지? 너 목숨 여러개야? 응?”
“형, 아, 아프―”
“누가 니 형이야. 새끼야. 우리가 같은 배에서 태어났어?” 

퍽! 퍽! 망설임 없이 콧등을 후려치는 손길은 무자비했다. 정확한 타이밍을 노려 후려친 콧등에서 우지끈,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흐아, 아! 아아아…!”
“가서 하던 약이나 계속 하세요, 이개새끼 씨. 괜히 왜 사람 건드려서, 기분을, 좆같이, 만드실까?”

휘익, 휙. 퍽! 서경은 감히 저를 딸감 취급하던 새끼의 머리칼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볼품없어진 코를 타고 줄줄 흘러내린 핏방울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흐아아아― 울음소리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흘리며 남자가 벌벌 떨었다. 그 얼굴에 서경이 그제야 치켜올렸던 눈썹을 슬쩍 내린다. 아, 기분 좀 풀리네.

“주서경! 그만해!”

소란을 눈치채고 달려온 것인지 누군가가 서경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힐끔 시선을 돌려 그가 자신이 아는 얼굴이란 걸 확인한 서경이 웃었다.

“김 실장, 안녕? 오늘 불러줘서 고마워? 덕분에 개새끼 한 마리 밟고 간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눈웃음까지 샐쭉 짓는 서경의 얼굴에 김 실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녕은 무슨! 그만해라, 그만! 걔 윤화 건설 둘째야, 임마! 거기 회장님이 그래도 자기 새끼는 얼마나 아끼시는 분인데!”
“아. 이 친구가 윤화 건설 둘째야?”

분명 조금 전 이름을 들어 알고 있음에도 마치 처음 들었다는 것처럼 서경은 시치미를 뚝 뗐다.

“난 또, 어디서 약 빨다 굴러 온 쓰레기인가 했지.”

결코 곱지 않은 손길로 밀치듯 서경이 상대를 놓아버리자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가 바닥으로 쓰러져 나뒹굴었다. 바닥에 남자가 흘린 피가 점점이 묻어난 탓에 김 실장이 기겁했다.

“야! 너 그러다가 윤화 건설 회장님이…!”
“좆까라고 하세요.”

제 손에 묻은 피를 기절한 놈의 옷에 야무지게 닦은 서경은 몸을 일으켰다. 저를 질렸다는 듯 보는 김 실장에게는 여전히 부드럽게 미소 짓는 얼굴을 보여주며.

“안내나 해. 김 실장아. 그 쪽은 이미 도착했다며?”
“…….”

바닥에 쓰러진 상대를 한 번, 서경을 한 번. 또 다시 쓰러진 상대를 한 번.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던 김 실장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윤화 건설 둘째 자식보다는 주서경이 더 중요하게 대접해야할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클럽 바운서 몇 명이 헐레벌떡 달려왔기에 바닥에 쓰러진 상대를 수습하는 건 그들에게 맡길 수 있었다. 질질 끌려가는 상대를 향해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서경이 입을 열었다.

“어디에 있어?”
“……다이아 룸.”
“아, 촌스럽게. 룸 이름 보석 명으로 하는 건 무슨 쌍팔년도 나이트에서나 하던 거 아냐?”
“우리 사장님 취향이 고상하셔서 그렇습니다, 주서경 이사장님.” 

김 실장이 일부러 깍듯하게 붙인 호칭에 서경이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는 곧 별다른 행동 없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내심 너무 까불었나 조마조마하던 김 실장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그 뒤를 따랐다.
소수의 회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클럽 ‘ore’. 한국에서 내노라 하는 기업의 자제 혹은 정부 고관직의 젊은 인사들이 주로 드나드는 이곳에서도 주서경은 벌써 8년째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한국 건설업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삼진 건설의 막내아들이었다.
비록 입양아긴 해도 회장이 마치 친자식처럼 아낀다는 말이 돌 정도로 주서경의 입지는 탄탄했다. 아직 제대로 된 경영 참여도 허락받지 못한 바로 윗 형과 달리 '삼진문화예술재단' 이사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다는 게 바로 그 증거였다.
이사장이라는 직함씩이나 달고 있어도 하는 짓은 이곳에 드나드는 놈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행태에 김 실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뭐, 저 정도면 이곳에서는 신사다운 수준이라고 할만 했다. 정말 인간의 탈을 쓰고는 못할 짓까지 벌어질 때도 흔했으니까.
그럼에도 주서경은 그 인간이 해선 안될 짓을 서슴지 않게 저지르는 놈들과는 다른 섬뜩함이 있었다.
김 실장은 아직도 서경을 처음 만난 날을 잊을 수 없었다.

‘네가 앞으로 여기 관리하는 놈이야? 나이는 몇이야? 아, 나보다 5살 많네? 그럼 우리 말 깔까?’

무난한 인사였다. 주서경이 자신의 손을 만졌다는 이유로 어떤 놈 팔을 부러트리며 건넨 인사만 아니었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주서경은 그 전까지 김 실장이 상대했던 그 어떤 인간과도 다른 독특한 분위기의 소유자였다. 상대가 저와 아주 친밀하다는 착각이 들게 하다가도 인정사정없이 찍어내는 잔혹함에 정신이 번쩍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 만나고 싶다는 그 투자자 놈이 이 안에 있다고?”

룸 앞에 도착한 주경의 물음에 김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자료 보낸 거 다 봤지? 신원도 확실해.”

ore에서는 종종 이런 식으로 인맥과 인맥을 연결하는 자리를 만들곤 했다. 주서경쯤 되는 인물에게는 달라붙고 싶어하는 인물도 많지만, 실제로 다리를 놔준 것은 이번이 네 번째였다. 그 정도로 드물게 성사된 ‘약속’자리였기에 김 실장도 나름 신경이 쓰였다.

“제법 돈 굴리는 규모가 큰 것 같아. 다만 이쪽으로 연결이 아직 안되어서 좋은 사업 파트너가 필요한 것 같더라고. 그래서―”
“알았어, 알았어. 하여간 김실장 우리 마누라 잔소리 하듯 잔소리한다.”

결혼한 적도 없는, 저보다 다섯 살은 어린놈의 너스레에 김 실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주서경은 험상궂은 김 실장의 뺨을 부드럽게 토닥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눈을 가늘게 접는 웃음에 어린 것은 정체모를 섬뜩함이었다.

“……애들 들여보낼 필요는 없대서 간단히 안주랑 몇 병 넣어두기만 했어.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

 제 할 일을 마친 김 실장이 얼른 뒤로 물러섰다. 이곳의 총괄 매니저로서 그가 할 일은 많았다. 애초에 상대가 주서경이 아니라면 자신이 친히 룸까지 안내하는 따가리 같은 짓도 하지 않았을 터였다.

 “기다려, 김 실장아.”

나른한 목소리로 서경이 김 실장을 붙잡았다. 아씨. 하마터면 얼굴을 와락 구길 뻔 한 김 실장은 얼른 표정을 가다듬고 서경을 바라봤다.

 “왜? 뭐 필요한 거 있어?”
“나도 어떤 새끼인지 정도는 알고 만나야 할 거 아냐.”
“……잠깐. 보낸 자료 보고 만나겠다고 한 거 아니었어?” 

아까 내가 분명 자료 보낸 거 봤냐고 물어보지 않았나. 김 실장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렇게 묻자 서경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이― 물론 봤지. 이름 차이현. 나이 32세. 직업 투자전문가. 미국에서 어쩌구 저쩌구. 신분 확실함. 다 봤지. 근데 그런 거 말고. 우리 김 실장 눈에는 어떤 인간으로 보이더냐고.”
“…….”

 잠시 생각에 잠겼던 김 실장은 주서경이 만날 상대에 대한 첫인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차분하고, 예의바른 친구?”
“뭐야, 그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평에 서경이 코웃음을 쳤다. 어느 동네 차분하고 예의 바른 친구가 회원제 클럽에서 만날 약속을 잡자고 하냐고. 뭐, 여기가 약 빨고 술 먹고 그 짓 할 때만 오는 곳은 아니긴 하지만.

“내 눈에는 괜찮은 느낌이었다는 거지. 뭐, 자세한 건 직접 만나서 본인 눈으로 확인하시죠, 주 이사장님.” 

계속 있다가는 괜한 트집이라도 잡힐 거라 생각한 것인지 김 실장이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그것을 탐탁지 않은 눈으로 보던 서경이 몸을 돌렸다. 문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소리 없이 문이 열렸다.
넓은 룸 안. 커다란 의자에 앉아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오.” 

서경은 다소 경박스럽게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은 기분이었다. 김 실장아. 차이현이 존나 잘생긴 예쁜이라는 말은 왜 안했냐?
이미 가버린 김 실장을 다시 불러다놓고 그렇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무르지 않는 단단한 광석을 조각하여 만들어낸 것처럼 선이 또렷하고 곧은 콧날. 매섭게 치켜 올라갔지만, 눈웃음 주름이 살짝 잡혀서 마냥 날카롭게 만은 보이지 않는 눈매. 다정한 웃음보다는 비웃음이 더 잘 어울릴 것처럼 형태가 또렷한 입술. 클럽 특유의 나른한 조명 아래서 더욱 흐려 보이는 그레이 컬러의 쓰리 수트를 거짓말처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몸. 얼굴 좀 팔아먹는다고 자부하는 연예인은 물론 선수 출신 중에도 이런 물건은 본 적이 없다. 서경은 저를 만나고 싶다 한 자칭 투자전문가 차이현에게 일단 그 얼굴과 몸만으로도 매우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제가 좀 늦었네요. 차이현 씨, 맞으십니까?”

 서경이 싱긋 웃으면서 건넨 말에 무표정하던 이현의 입가가 부드럽게 이지러졌다. 분명 호감을 주는 얼굴임에도 묘한 위화감이 든 탓에 서경은 일순 멈칫했다.

“네, 안녕하십니까. 주서경 씨.”

자리에서 일어선 남자는 서경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성큼, 성큼. 몇 걸음을 채 걷지도 않아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저를 향해 가까워지는 남자를 보며 주서경은 생각했다. 이 새끼, 나보다 크네?
180이 넘는 키 탓에 보통 그는 사람을 내려다보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차이현은 그런 저를 내려다보는 쪽이었다. 190은 되려나. 괜한 승부욕에 서경이 이현의 키를 짐작해보는 사이. 이현이 손을 내밀었다. 

“차이현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서 무척 기쁩니다.”

흔해빠진 자기소개. 상투적인 인사치레. 평소 같으면 재미없다는 티를 냈을 서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향해 내밀어진 커다란 손을 망설임 없이 잡았다. 타악― 손바닥에 달라붙는 뜨거운 체온에 입꼬리가 저절로 움찔거렸다.

재미있네?

절 만나 기쁘다고 말하는 남자의 눈에는 기쁨의 조각조차 보이질 않았다. 웃고 있는 입매와 다르게 감정을 완전히 감추지 못한 눈매가 증오를, 분노를 품고 있었다.

“앞으로 가능하다면 주서경 씨와 꼭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습니다.”

거짓말. 차이현이라는 남자가 보이는 태도와 하는 말은 전부 거짓이었다. 저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음험하고도 차가운 시선 아래서 주서경 역시 웃는다.

김 실장. 이 눈깔 병신 새끼.
저게 어딜 봐서 차분하고, 예의바른 친구야?
저건 굶주린 짐승새끼잖아.

날, 집어삼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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