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연의 결혼식에 참석한다며 제주까지는 오고는 남형과 부딪칠까봐 노심초사했던 승효.


오늘도 하루 종일 남형과 마주치지 않으려 밖으로 민철과 쏘다녔는데.


술상너머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남형의 눈길이 심상치 않다.


“노세 놀아 젊어 놀아. 늙어지면 못노나니”


술이 얼마나 들큰하게 올랐는지……. 일어나서 춤까지 추는 민철


“아, 저놈 야무지게 노는 놈이네. 그려”


조회장을 비롯해 집안어른들이 호탕하게 민철을 보며 웃는다.


“얼씨구나, 절씨구나 아니놀지는 못하리라.”


*


“민철아 정신차려봐.”


말술이라 자랑하던 거답지 않게 고주망태가 된 민철을 부축하고 낑낑거리는 승효 남형의 따가운 눈길을 피하다 결국 잔치의 끝까지 왔다.


“얘 미쳤나봐.”


세연이 휘청거리는 민철의 어깨를 툭친다.


“승효야, 조심해서 들어가.”


“네. 누나도 얼른 주무세요.

내일 뵐게요.”


집밖까지 배웅 나온 세연을 뒤로 한 채

기사의 도움을 받아 차를 타고 숙소인 호텔로 이동한다.


휘청거리는 민철과 함께 묶는 룸까지 들어와 옆침대에 민철을 눕힌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 멍하니 한숨을 쉬는 승효.


‘잘된 일이야…….


그런데……. 그런데…….’


자신을 바라보던 남형의 얼굴을 떠올리던 승효가 자신의 뺨을 두드리고는

씻으려 옷을 챙긴다.


그날 밤 쿨쿨 잠들어 있는 민철의 코고는 소리 한편, 뒤척이는 승효


승효의 폰으로 문자가 온다.


[나랑 얘기 좀 해]


남형의 문자다.


[할 얘기 없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리고 결혼 축하드려요.

진심으로 두 분 행복하게 잘 사셨으면 좋겠어요]


곧 승효가 있을 호텔로 갈듯 차의 운전대에 있던 남형이 쾅하고 핸들을 미친 듯 때린다.


그리고 핸들에 고개를 파묻는다.


‘미치겠어……. 구승효 ’


다음날, 간절하게 남형과 이루기를 바랐던 서연을 축복해주는지 날씨는 구름 한 점 찾아보기 힘든 새파란 하늘과 화창한 날씨.

티 없이 맑은 아름다운 해변의 모래사장 수많은 꽃들로 꾸며진 버진로드 위에서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 남형과 세연의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언론에 비공개로 치러지는 소수의 사람들만 초대된 결혼식이었지만, VIP의 일로 비상이 걸린 상태로 몇 날 며칠을 분주히 준비했던 제주의 호텔 직원들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결혼식 행사보다 부족함이 없었다.


신랑입장.

뻣뻣이 굳어 있는 남형의 모습을 승효는 보지 않으려 시선을 돌린다.


버진로드의 앞에 서 신부입장을 기다리며 힐끗, 자신을 보고 있는 남형의 시선을 애써 모른 체한다.


이윽고, 신부입장

진회장의 팔짱을 끼고 버진로드를 걷는 세연.

그 모습을 보며 혼주 석에 앉은 신부의 고모가 눈물짓는다.


모든 하객들이 이 순간을 축복하며 박수를 치고, 승효 또한 박수를 치고 축하하며

가을의 신부가 되서 화사하게 웃고 있는 신부 세연을 웃으며 쳐다본다.


그러다 그 옆에 있는 남형과 눈이 마주쳐 버린다. 둘의 거리가 제법 있지만, 그 순간 마치 카메라를 줌인 한 것처럼 서로에 대해 시선을 거둘 수 없는 둘


승효가 먼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린다.


“지금 제앞에는 미래가 촉망되는 젊은이 조남형군 과 어느 누구보다 제가 아끼는 제자 진세연양의 사랑이란 이름으로 하나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세연의 부탁으로 주례를 맞게 된 정교수의 주례사가 이어진다.


“신랑! 앞으로 수없는 세월동안 힘드나 즐거우나 신부를 사랑하고 아껴주겠습니까?”


“네.”


남형이 무미건조한 대답을 한다.


“신부! 신랑을 이해하고 사랑하겠습니까?”


“네.”


세연이 수줍게 말한다.


순간, 정적이 흐르듯,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승효가 마치 무엇에 맞은 듯 굳어버린다.


‘왜지?’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


‘이날만을 바래왔는데. 왜?’


이상하게 목에 무엇인가 걸린 것처럼, 환히 웃고 있는 세연을 보던 승효의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제 당신이 날 안보게 될 텐데…….

근데 왜 마음이 이런 거죠?’


‘대체 왜?’


“항상 두 분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을 뛰어넘어 상대방을 통하여 기쁘고 아프고 즐겁고 행복하십시오.”


정교수의 축복의 주례가 끝이 난다.


자신도 모르게 승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자신이 눈물이 흘린 것을 알고 깜짝 놀란 승효가 쓰윽 하고 서둘러 눈물을 훔친다.



“세상에, 네가 왜 우니?”


결혼식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려는데. 그런 승효를 붙잡는 경아다.


“네?”


“얘, 너 어디 안 좋니? 얼굴이 새하얗다.”


“승효야, 너 어디 아파?”


경아가 새하얗게 질려있는 승효 얼굴을

보고 놀라 묻고, 멀찍이 떨어져 다른 하객들과 인사를 잠깐 나누고 온 민철 또한 승효의 안색을 살핀다.


“세상에 술 냄새…….”


“네, 어제 많이 마셔서…….”


민철이 다가오자마자 경아가 민철을 핀잔주는데…….


“아니 술독에 빠진 얘는 멀쩡한데. 너는 왜 이래?”


“얘가 좀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래요.”


민철이 승효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경아에게 말한다. 마치 듬직한 큰형처럼 승효를 챙기고 보호해주는 민철이다.


“ 하나는 비실거리고, 하나는 술고래고. 중간치가 없네! 없어…….”


“네.”


경아의 구박 같지 않은 농담에 민철이 활짝 웃는다.


“그래도 사진은 찍고가야지. 남는 건 사진뿐이다. 결혼식에 참석했다 증명사진은 남겨놔야할거 아니야.”


경아가 말한다.


“.......”


“사진 몇 컷만 빨리 같이 찍고, 들어가던지 해 응?”


“그래, 승효야. 우리 형, 누나랑 사진 좀 찍자.”



민철과 승효가 신랑신부일행에게 다가간다.


“형님, 결혼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형수님 만수무강 하십시오.”


민철이 너스레를 떨며 90도 인사를 하는데 결혼하고 긴장이 풀려버린 세연이 어이없는 듯 민철을 보며 웃는다.


그 옆을 새하얗게 질린 안색의 승효가 서있다.


“세상에 승효야 왜 이래?”


“몰라요.”


서연이 민철을 지나쳐 승효에게 관심을 갖는데…….


남형 또한 불편한 기색으로 승효를 본다.


“아니, 얘는 술한방울 안마셨는데. 이러네. 뭐 잘못먹은것도 없는데. 나랑 똑같이 먹고 자고 했거든요.”


“승효가 너랑 같니?”


“아니! 다르면 뭐가 다른데요?”


여기가 결혼식장이라는 것도 있고 세연의 얘기에 민철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민철이 자신에게 잠깐 쏟아진 주위의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닫아버리고 기죽은 듯 서있는다.


“자, 얼른 사진부터 몇 컷 박아.”


어느새 다가온 경아가 이들 넷의 교통정리를 하는데……. 그래. 너는 세연이 뒤,

너 비실 이는 남형이 옆에 서…….


“아이고, 꼭 형아 동생처럼 잘 맞네…….

민철, 서연, 남형, 승효 이런 식으로 넷이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며 경아가 감탄을 한다.


“남형아 좀 웃어, 긴장 풀고, 얘, 너도 좀 웃고…….”


경아가 뻣뻣이 굳어있는 남형과 승효를 잡으며 말한다.



*

“배 안 고파요? 얼른 식사하죠?”


그날 밤, 남형과 서연의 첫날밤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룸서비스로 들어온

음식 앞에 마주앉은 두 사람.


“말, 그렇게 안했으면 좋겠어. 불편해.”


세연의 존대가 싫은 남형이 말한다.


“알았어. 그런데 이러면 진짜 오래 같이 산 부부 같단 말이야.”


어느새 남형의 곁에 온 세연이 남형의 옆에 앉아 팔짱을 낀다.


남형이 팔을 빼려하지만 헤벌쭉 웃는 세연이 남형의 팔을 꼭 잡고 있다.


“우리 엄마랑 아빠는 평생 두 분끼리는 존대하셨어. 서로 아끼고 존중해야한다고. 그래서 나도…….”


“나는 이런 거 불편해. 그냥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어. 나는 아직 편한 감정 아니야.”


“........”


세연이 상처받은 표정을 짓는다.


“알았어. 우리 당분간을 그러자. 아이 태어나면 그때부터 그러지 뭐…….”


다시 헤벌쭉 밝아지는 표정의 세연…….



둘의 식사


끼익


남형의 접시위에서 스테이크를 써는 남형의 칼질소리가 괴상하고 거친 음을 낸다.





무엇인가에 계속 화가 난 듯 한 남형의 눈치만 힘겹게 보고 있는 세연이다.



얼마뒤……. 내가 먼저 씻을까?


세연이 말한다.


남형이 질끈 눈을 감았다가…….


“그래.”


대답한다.



자신에게 사랑의 마음이 없는걸 알면서도 저렇게 해맑고 설레어 할 수 있을까?


내가 전에 알던 당찬 진 세연은 어디로 갔지?


변한 세연의 모습이 너무 불편한 남형이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남형이 고개를 이리저리 젓는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 승효에게서 온 연락은 없을까 핸드폰을 확인한다.


주위를 안절부절못하며 룸안을 서성거린다.


그리고 얼마뒤.


룸안 냉장고에 있던 디저트와인을 꺼낸다. 그리고 그곳에 혹시 몰라 준비해두었던 수면제 가루를 넣는다.



가운차림의 세연이 나오고.


“잠깐만 기다려”


남형이 세연에게 디저트 와인을 한잔 따라주며, 욕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물소리가 들린다.



‘구승효’


‘구승효’


‘구승효’


“XXXX”


남형이 자신도 모르게 욕을 지껄이며


구승효라는 생각만으로 단단해진 자신의


물건을 부여잡는다.


‘구승효. 내가 널 놔줄 거 같아?’




욕실에서 나오는 남형


약의 기운으로 세연이 소파에 쓰러져있다.


그런 세연을 안아 침대에 데려가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는 남형


죄책감같은것은 느끼지 못하는 표정이다.



그리고 호텔의 프론트로 전화를 하는 남형



“숙박객 명단 좀 확인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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