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는 어땠소?"


채령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무슨 의도로 물은 건지 몰라 의아해 하는 동안 율은 그런 채령을 빤히 바라보았다. 대답할 때까지 얼굴을 뚫을 듯이 볼 기세라, 채령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땠냐는 말씀이 무얼 뜻하는 건지 모르겠사옵니다."


"아."


율은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어떤 사람 같았냐고 물은 것이오. 저번에도 만났다고 들어서......"


"좋은 분......같았습니다."


"음, 또?"


"자상하시고,"


"음."


"아름다우시고,"


"음음."


계속 말해보라는 추임새에 채령은 되는 대로 나열했다.


"화과자 만드시는 솜씨도 일품이셨사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율이 눈가를 찡그렸다.


"화과자?"


"선물로 주셨사옵니다. 그에 대한 답례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혹시 꽃 모양이었습니까?"


"?"


채령이 그걸 왜 묻냐는 눈빛에 율은 '허허......'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황후에 대해 좋게 봐주니 기쁘구려."


투기를 하지 않음에 안심한 건가. 채령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는 분명히 황후를 아끼고 있었다. 그러나 황제가 황후의 침전에 들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황후는 수많은 조롱을 받고 있다. 그녀를 약한 존재로 떨어뜨린 것이 본인이면서 걱정하는 행동이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나도 이만 황후궁으로 가봐야겠군. 부디 황후와 사이 좋게 지내시오, 귀비."


벌써? 채령은 치맛자락을 꽉 쥐었다. 단 둘이서만 대화를 나눌 있는 시간이 얼마나 값진데....... 채령은 멀어져가는 황제를 불렀다.


"폐하!"


황제가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냐는 얼굴에 채령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긴장한 표정이지만, 눈빛만큼은 흔들리지 않은 채로 입을 떼었다.


"달맞이 꽃은 사랑하는 달님을 뵈기 위해 밤중에 제 얼굴을 내밉니다."


채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늘 밤, 소녀도 폐하의 달빛을 받기 위해 기다리겠사옵나이다."


율이 입을 떡 벌렸다. 그는 어지간히 놀랐는지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그 충격받은 모습에 채령도 '아차'했다. 지나치게 당돌한 발언이었던가. 그 때, 황제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누가 봐도 채령을 달래기 위해 어설프게 지은 웃음이었다. 채령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든 후, 율은 발길을 돌렸다.


'이를 어쩐담.'


율은 한순간에 거절당해 상처받은 표정을 짓던 채령을 떠올렸다. 걱정에 뒤를 돌아보려던 율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을 참았다.


'소은에게 별 감정이 없는 거 같은데.'


소은이야 여자 아이 하나 정도는 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며 호언장담하고 있지만. 율은 제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대놓고 동침의 의사를 표현한 소녀가 그리 만만치 않을 거라 생각했다.


'괜찮으려나.'


소은은 단 한 번도 자신이 갖고 싶은 걸 놓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이 나라조차도.'


그렇다. 이 나라는 율이 다시리는 게 아니었다. 율은 과거를 생각했다. 열 살 정도 되었을까, 아직 젖살이 통통하던 어린 시절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두 사람은 곧잘 풀밭에서 뛰어놀고는 했다. 정확히는 소은이 사내아이처럼 바지를 입은 채로 뛰어다녔고, 율은 헥헥거리며 뒤쫓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둘은 뛰어다니다 지쳐 풀밭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율아.'


어느 날이었다. 소은은 하늘을 보며 말했다.


'넌 꿈이 뭐야?"


그 말에 율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부끄러운 얼굴로 한참을 망설이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겨, 결혼 하는 거.'


'흠.'


소은을 두고 한 이야기였는데, 정작 그녀는 눈치를 채지 못한 거 같았다. 율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소은이 너와.'


그제야 소은은 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녀 소년은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눈싸움에 진 건 율이었다. 율은 눈을 내리깔며 더듬거렸다.


'미, 미안.'


'사과할 거 없어.'


소은이 상체를 일으켰다. 그녀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과하는 버릇은 아주 나쁜 거야. 미안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도 사과하게 되니까.'


'하지만 너가 싫어하는 걸.'


'나 안 싫은데?'


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과처럼 붉어진 얼굴에 소은은 깔깔 웃었다. 입을 크게 벌린 채 하하 호탕하게 웃는 소은의 얼굴이 보기 좋았다. 항상 소매로 입을 가린 채 웃어야 하는 여느 여인네들과 달리 소은은 자유로워보였다. 큰 소리 웃던 소은은 율을 향해 말했다.


'결혼하자.'


율은 입을 떠억 벌렸다. 어린 소년이 뭐라고 뭐라 하기도 전에 소은이 말을 덧붙였다.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 소은은 웃음을 그쳤다. 그리고 손을 내밀며 한결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너 역시 내 소원을 들어줘야해.'


어쩔줄 몰라하던 율은 그 말에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율은 눈을 깜빡였다.


'무슨 소원인데?'


어린 소은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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