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 내일의 해는 1. - 4. http://posty.pe/bxp005


[다자츄] 4.


 으음. 머리 아파. 츄야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뒤척였다. 푹신한 침대는 피곤에 절은 자신을 안정적으로 받쳐주고 있었고, 곧이어 휴가기간이라는 걸 생각해낸 츄야가 좋은 향이 나는 이불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나카하라씨가 부지런하다는 것도 거짓말인가 봐요.
 하하.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아츠시군?
 적진 한 가운데서 이렇게까지 잘 자잖아요. 게다가 벌써 밤인데 일어나다 다시 잠드신 것 같고...
 츄야는 꽤 부지런한 편이 맞다네. 그냥 피곤할 뿐이지.
 다자이씨는 나카하라씨를 정말 많이 챙겨주시네요.
 그야 뭐, 이래보여도 상성좋은 파트너였으니 말이네.

 응 그렇지. 치고박고 싸우긴 해도 전장에서 자신들은 최고였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다자이와 같이 있는 자신이나, 자신과 같이 있는 다자이나 모두... ...뭐? 다자이?

 헉 시발!!
 드디어 일어났나 츄야? 일어나자마자 욕이라니, 역시 성깔이 곱진 못하군.
 이 개새끼, 날 어디로 데려온거야!!
 안심하게. 탐정사무소의 병실일 뿐이니까 말이야.
 요사노씨 모셔올게요.
 그래주면 고맙겠네 아츠시군.
 이, 인호...

 인호까지 있는 걸 보면 정말로 탐정사무소인가! 하기사, 다자이새끼를 따라가다 블랙아웃 되어버렸지. 그럼 쓰러진 걸테고. 헉, 그럼, 필름은?

 야.
 왜 그러나 츄야? 혹시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나? 요사노씨는 그냥 몸살기가 좀 있다고,
 닥치고. 내 필름내놔.
 필름? 아아 그거.
 빨리!

 요사노인가 뭔가 하는 그 괴짜 의사에게 보여지기 전에 어서,

 미안하지만 이미 진단은 끝났어.

 문을 닫으며 들어오는 요사노의 말에 츄야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씨발. 씨발 그럼, 그럼.

 2개월인가 보더라고. 아기.

 츄야가 고개를 푹 숙였다. 씨발. 어떡하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지? 다자이는? 이 새끼도 알고 있는거지? 그, 그럼 다자이가 애 아빠라는 것도 아는건가? 아니다. 이건 내가 말하지 않는 이상 알 방법이 없지. 그래. 전력을 위해서라도 무장탐정사에서 이걸 알아버린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아. 들켰지. 지금.
 요사노가 다가와 무어라 계속 말했지만 츄야는 멍한 눈으로 앉아있다가 곧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좋은 향이 나던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을 딛었다. 겉옷이 다자이의 뒷쪽에 걸려있었지만 필요없었다. 다자이 자식과 부딪히고 가는게 더 피곤할테니까. 어짜피 사라질 태아다. 아기가 아니라 그저 태아라고. 수정체일 뿐이란 말이야. 내가 애를 낳는다니, 말이 안 되지. 누구랑 같이 만들었던간에, 애초에 낳지도 않을 테니 저 오지랖넓은 의사선생의 주의사항 같은건 듣지 않아도 된다.

 어디 가는건가 츄야?
 알 거 없잖아. 아니, 내가 무장탐정사에 있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 아니냐?
 츄야.
 ...진찰은, 참 고오맙게 생각하지.
 츄야!

 다자이가 일어나 츄야를 잡았지만 그를 묶어두진 못했다. 애초에 자신들은 다자이가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말 그대로 '옛' 파트너일 뿐이었으며, 지금은 적이다. 그것도 다자이는 포트마피아에서 빠져나간 배신자.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이면 안 되는. 죽일 수 없는.
 그렇기에 다자이는 츄야를 놓아줄 수 밖에 없었고 그를 뒤따라가지도 못했다. 츄야가 임신이라니. 2개월이라고 쓰여진 필름 따위 관심없었다. 일단 츄야를 놀리려고 빼앗아 달린거고, 그 다음은 정말 종양이라면 우리네에도 솜씨좋은 의사가 있으니 무료진찰이라도 받게끔 하려고 했다. 적에게?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사실 길드 사건 이후 자신들에게 '죽여야할 적'이라는 타이틀은 많이 없어졌다고 생각했으므로,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임신이라니. 2개월 전 밤에 츄야를 찾아간 것은 자신이다. 그 누구도 아닌, 다자이 오사무, 자신.
 확신할 순 없지만 츄야는 자신 이외 다른 애인이 있거나 파트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전해듣는 소식통에 의하면 그랬다. 그리고 그 소식통은 일단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정확한 것이라서, 평소 자신의 소식을 들을 나카하라 츄야 만큼이나 츄야의 소식을 듣는 다자이 오사무는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결국 뒤늦게 츄야의 겉옷을 가지고 뒤를 따라나선 다자이가 얼마 가지않아 그에게 겉옷을 걸쳐주며 발을 맞췄다.

 할 말이 있네.
 난 들을 말 없어.
 츄야. 너도 알지 않는가.
 알긴 뭘 알아. 난 아무것도 몰라.
 두 달 전에 내가,
 몰라! 모른다고!!!

 헙. 다자이가 잠시 놀랐다가 곧 잠잠해진다. 츄야. 어두운 밤. 길 위의 츄야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그 표정을 알 수는 없으나 꽉 잡은 주먹으로 보아선... 츄야. 다자이의 부름에 츄야가 낮은 음성으로 화를 누르며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 아니. 설사 그렇다고 해도, 난 모르는 일이야.
 츄야. 그게 어떻게 모르는 일이 되는가.
 ...너 애인있잖아. 내 일에 왜 이렇게 간섭하고 지랄이야. 게다가 우리, 적 아니었나? 천하의 다자이 오사무가 오지랖이라도 부리는 거냐?
 그 여자야, 헤어지면 되는거고.
 야.

 그래. 이 정도야 알고 있었다. 네가 사귀는 애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그 여자들 조차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 여자랑 헤어지면 뭐 어쩔건데. 니가 나 책임이라도 지려고 그러냐?
 당연한거 아닌가?
 그게 왜 당연해? 내가 뭐 시발. 니가 뭔데 날 책임진다느니 어쩐다느니, 그런 오지랖을 부리냐는 말이야.
 그거야 츄야 뱃속에 있는 아기는 내 아기이기도 하니까.
 뭐? 어이, 다자이. 설마 이게 왜 니 애라고 생각하는 거냐?
 츄야와 만나는 사람들의 정보따윈 내가 다 알고있어. 그러니까 이런걸로 속이려고 하지마 츄야.
 너 나 안 좋아하잖아.
 ...츄야.
 나 안 사랑하잖아. 근데 왜 책임지려고 하는데? 설마 이게 니 새끼 애라고 쳐. 그럼 뭐? 어쩌라고?
 츄야.
 나 애 안 낳아. 누구 좋으라고 애를 낳아. 1주일동안 고민하고 오라길래, 고민할 필요도 없이 1주일 동안 시간이나 때우고 있었던 거다. 내일 지울거야.
 .......
 만약에 말이야. 니가 날 좋아할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만약에 말이야.
 .......
 니가 나한테 조금의 정이라도 느껴서 날 책임지고 싶다고 하더라도. 난 너랑 못 살아. 아니, 니가 나랑 못 살지.
 왜 그런 생각을 하는건가.
 넌 다자이 오사무잖아. 한 달 내에도 몇 번이나 애인이 바뀌는, 미녀와 동반자살이 꿈인 다자이 오사무잖아.
 ...그런 건 금방 고쳐.
 살다가 정이 들어서 언젠가 내가 좋아지더라도, 사람 본성이 어디가겠냐. 애 낳기 전에 떠나지 않으면 그게 그나마 다행인거지. 난 너 같은거 믿고 애 낳을 사람 못 돼. 그리고 지금 당장 애가 필요하지도 않고, 애를 낳아서 문제되는건 나 뿐이란 말이다.

 확실히 그랬다. 이건 반박할 여지도 없이 맞는 말이었다. 임신을 하면 일에 문제가 생기는 건 츄야 뿐이었고, 츄야를 책임지겠다고 해서 바로 결혼하는게 가능할리도 없다. 우리 사랑하지 않잖아. 츄야의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꼭 사랑하는 사람만 결혼하는건 아니잖아. 그래도 이런식으로 사고쳐서 결혼하는거, 좋을거같냐? 심지어 악감정만 있는데. 실제로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답은 나왔다. 그는 믿을 사람이 없었고, 임신과 육아로 일에 차질을 빚고 싶지도 않아했다. 이 상태에서 자신이 해 줄 말이 어디 있으며, 할 수 있는 자격은 또 어디있는가.
 다자이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츄야가 신경쓰이긴 했지만 몇 번 몸을 섞었을 뿐, 그 감정이 연애로 발전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오히려 츄야가 자신에게 쌀쌀맞게 구는 정도만 점점 커졌을 뿐이다. 그런데, 정말로, 감당할 수 있겠어?

 모르는 척 하고 넘어가. 포트마피아에서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까 요사노였나, 그 의사선생과 너만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모르게 넘어갈 일이라는 거야.
 ...마음은 이미 정해놓은 건가.
 할거다, 낙태.
 내가 츄야를 사랑하고 츄야가 날 믿을 수 있게 된다고 해도?
 ...간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괜히 물음으로 혼란스럽게 하지 말란 말이야, 망할 자식.
 역시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들통나서 마음 아프고 혼란스러운건 저만 다 하지. 이래서 죽기 살기로 빼앗으려 했던건데.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어쩐지 조금. 울음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렸다.

@gagru_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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