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말 8-16, 하드 스토리 스포 주의!






프라우는 끝없는 지평선을 향해 앉아 있었다. 다리를 까닥이며. 세계의 위로 두텁게 인과율이 쌓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며. 바닥은 보이지 않았고 공허는 끝없이 이어졌으며 프라우의 뒤에선 둔탁한 시계 소리가 그 엘프를 쫒고 있었다. 아주 느리고 탐욕스럽게. 프라우의 발 아래는 아무 것도 없었다. 아마 세상의 끝인가 보지, 프라우는 생각했다. 고대 사람들은 늘 그렇게 생각했다곤 해. 세상이 아주 평평하기 그지없어서 세상의 끝에 도달하면 떨어져 버릴 것이라고 여겼지.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었나 봐. 그렇지? 

있지,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 로드. 아주 고대의 이야기인데... ... 마녀는 제 영혼을 떼어서 다음 생으로 넘겨 줄 수 있대. 기억도, 자신의 생도 함께 넘겨 주는 거야. 신기한 이야기지? 마녀니 뭐니 하는 시대착오적인 호칭은 뒤로 미루고서라도 고대의 사람들에게도 '전생'이란 개념이 있던 거야. 


사실 아니야. 전부 거짓말이지. 다음 생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세계는 끝없이 흘러가. 탐욕스럽게 모든 것을 집어 삼키며 멸망을 향해 달려 가지. 죽음 이후의 삶이 과연 있을까? 죽음 또한 세계가 바라는 것일진대. 빛조차 집어 삼켜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소리조차 집어 삼켜져서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희망조차 집어 삼켜져서 아무 것도 남아있질 않는 거야... ... . 당신은 좀 달랐으려나? 아냐, 당신도 다르지 않아. 모든 세계는 멸망을 바라. 그들은 이미 너무 오래 살아 왔거든.


마녀가 하는 일은 다른 게 아냐. 몸과 정신을 조각 조각 분해해서 세계가 차마 빨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거지. 그리고 넘는 거야. 세계를... ... 똑같이 생겼지만 한없이 다른 세계들을 향해 날아가는 거야. 그렇게 넘어간 자신이 자신이란 확신은 가질 수 없고 다른 매듭을 짓는다는 보장도 없으니 마녀들이,

방관자들이 그리 적은 것이었겠지. 천기누설을 하면 일찍 죽는다는 속설을 알아? 세계는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자신이 어떻게 자라날 지 알게 되면 화를 내거든. 방관자들이 입을 닥치고 있는 이유야. 나도 그렇고. 그러니 그걸 감당하고서라도 세상을 넘는 방관자들은 정말 사랑해 머지않는 것을 가져버린 것이겠지? 그렇게 만난 것이 자신이 사랑하던 것이란 보장도 없고 사랑하던 것을 만난 자신이 꼭 같은 자신이란 보장도 없는데, 기어이 공허에 모든 것을 바칠 만큼이나?


나는, 로드. 나의 왕. 지금 세계의 끝에 서 있어. 프라우가 앉은 곳에서는 뚝뚝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낡은 시계 초침 소리일까? 아니면 멸망을 향하는 세계의 비명인가? 프라우는 짧게 웃었다. 더없이 사랑스럽게. 나 지금 당신을 만나러 세계를 넘을 거야. 


세상을 지탱하는 게 뭔지 알아, 내 사랑, 나의 왕?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수많은 이야기가 아냐. 신은 더더욱 아니고. 그건 당신이야. 오직 당신만이 세상을 지탱해. 그건 당신만이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야. 당신이 아끼는 기사단, 당신의 동맹들. 모두 죽어 있는 것이야. 이 세계는 오직 당신을 위해 살아 있고 당신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살아 숨쉬는 것이야.

그럼 당신이 떠난 세계에는 도대체 무엇이 남지?

그럼 당신이 버린 세계에는 도대체 무엇이 남지?


프라우는 멈추어 선 시간선 위에 앉아 있었다. 떠나버린 로드의 껍데기를 바라 보며 황제는 오만한 표정을 지은 채 멈추어 있었고 세상은 온통 흑백이었으며 기사단과 로드를 따르던 동맹들은 시간에 잡아 먹혀 종말을 향해 달려 가고 있었다. 새는 지저귀는 것을 멈추었고 강물은 굳어 버렸으며 하늘을 따라 흐르던 구름은 조각조각 흩어지고 있었다. 도미노처럼 차례차례 무너지는 세상을 프라우는 바라보고 있었다. 프라우의 발 아래로 사람들의 비명과 울음과 외침과 찬탄이 차례 차례 떨어져 내렸다. 프라우 자신이 입 밖으로 내뱉는 말조차 누군가에게도 닿지 않고 세상의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었다. 이런 결말이라니 이 프라우 레망과 어울리지 않잖아. 프라우는 생각했다. 


그래서 프라우는 세계를 넘어가기로 했다. 로드가 살아 숨쉴 세계로.

프라우는 몸을 기울여 탐욕스런 아가리를 쩍 벌린 공허와 마주했다. 


프라우는 공허의 아가리로 몸을 던졌다. 


아직 당신에게 듣지 못한 말이 많아. 아직 당신에게 질리지 않았어. 아직 당신을 붙잡고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어. 유일하게 살아 있는 것인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위해 몸을 산산조각 부서트리고 정신을 쪼개고 또 쪼개 세계를 넘어 당신에게 닿을 만큼이나!


손끝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육신을 보며 프라우는 더없이 행복하게 웃었다. 꼭 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도 된 것 같네. 나는 떨어져서, 한없이 떨어져서, 손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허물어지는데, 시계 소리는 들리지 않고, 떨어져 내리는 찻잔과 새벽 네 시와 아침의 빗소리와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흰 토끼를 찾아 허우적거리는 거야. 도착한 세계는 어떤 곳일까 알지 못한 채로. 모든 것이 이상한 원더 랜드를 향해!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고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곳으로. 나의 육신과 나의 정신과 나의 삶의 족적이 모두 묻힌 이 망해버린 세계를 뒤로 하고 말이야. 참 이상하지, 나는 언제나 체셔 같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초승달처럼 미소지으며 의뭉스럽게 사라졌으나 사라지지 않은... ... .


당신이 내 세계의 기적이야. 당신만이 프라우 레망을 알아. 그곳의 나는 내가 아니잖아. 그곳에서 나고 자란 나는 내가 아니지, 나도 알고 있어. 아무도 나의 존재를 모르겠지, 그곳의 프라우 레망은 이곳의 프라우 레망이 아니니까. 꼭 빙의물 같네!


그래도 무슨 상관이야? 당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렇지, 내 사랑? 나 당신을 찾을게. 꼭 나를 찾아 줘. 알겠지? 다른 이가 아니라 프라우 레망을 찾아줘야 해. 색이 다른 내가 아니라 보라색 머리의 괴짜 엘프를 찾아 줘야 한다고.


그럼 그 곳에서 다시 한 번 당신을 모실 테니까... ... .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겠지? 쉽잖아. 딱 하나야. 날 기억하고 있기만 하면 돼, 내 사랑, 나의 전하!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하드 스토리로 가기 위해 세상을 넘는 프라우로 프라로드... 아무리 생각해도 로드가 사라진 세계는 멸망을 향해 달려갈 것 같죠 그러나 프라우는 남아 있을 것 같아서 시작한 날조입니다 얘 말하는 것 보면 예토전생한게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도 지가 세계 넘어서 로드 쫒아왔을 것 같아서


6/14 1차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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