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우클릭-'연속재생'을 누르시면 노래를 끊기지 않고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서로가 고통을 느끼던 시간에 서로를 만났다면,

지금은 달랐을까.









나이가 들면 고집밖에 안생긴다고 하던가. 학생들을 등진 채 판서중인 영어선생님은 수업시간의 반을 칠판앞에서 보낸다. 그 흐름에 한참을 필기하는것을 바라보면은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정년을 얼마 남지 않은 선생님은 칠판과 수업하는게 더 좋은 듯하고, 책상에 고꾸라진 학생들을 대하는 것이 더 편해보인다. 한번 시작된 비는 그칠 생각이 없는지 교실을 침침하게 만들었고, 빗소리는 자장가되어 교실을 감쌋다. 오후수업의 나른함과 합쳐져 이미 자고있는 학생이 반이다. 


나는 종종 그런것들을 좋아한다. 

군중들 사이에 느껴지는 고독함, 바쁨속에 혼자 느려진 기분같은것들.

이렇게 장마가 시작되는 날이면, 우울함을 떨치기 위해 다른것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는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우울의 것이아닌 회상을.





너를 처음 보았던날

강다니엘.


너는 우리가 고3이 되어 처음만났다고 하겠지만, 사실 너를 처음본 건 고1입학식이었다.

아직 겨울의 차가움이 남아있는 이른 아침의 입학식에 너는 교복이 아닌 트레이닝복을 입은채 내 앞에 서있었다. 교복위에 코트까지 걸친 내가 과하다고 느껴질 만큼 한장의 옷으로 서있는 너는 단단해보였다.

운동을 해서 그런가, 깔끔히 정리 되어있는 뒷목에서 남자의 페로몬이 나왔다. 입학식이 늦어지면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너를 처다보는 시선따위는 모르는건지, 상관이없는건지 에어팟을 귀에끼고 노래를 들으며 서있었다. 뛰어난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으레 빛이난다. 

다니엘 너는 그런 아이다. 가만히 있어도 시선이 가는, 지나가면 고개를 돌리게하는 그런 류의 것.


또래에 비해 체격이 많이 큰 너는, 어깨도, 키도 뭐든 다 컸다.

내 시선은 고작 너의 어깨에 머무르는 정도라 맨 앞줄 선생님이 말하는 소리만 겨우 들릴 뿐, 

답답한 마음에 까치발을 들어 어깨너머로 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종아리에 쥐가 날것만 같아 한숨을 쉰다는 게 꽤나 컸던지 너의 돌아보는 시선에 눈이 마주쳤다. 


"아, 안보이나."

눈치가 빨랐던 너는 무심한 듯 자리를 바꿔 나의 뒤에 서있었다. 

그 때 너는, 사투리를 했던걸로 기억한다. 

공부와, 야구부가 유명한 학교에서 사투리를 듣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때의 너는 지금보다 날 것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때가 우리의 첫만남이다. 

사실 그 때, 나는 줄을 잘못 서있었다. 한줄인줄 알았던게, 사실 두줄정렬이라 옆반에 서있었다. 


고3과 비슷하게 고1,2학년을 보냈다. 

2년동안 습관이 내게 생겼다.

창 밖을 보는 습관.

아이들의 날이 선 시선을 피해, 아침일찍 등교를 하는 나는 무료한시간을 창밖을 자주 봤다. 

보통 엎드려서 잠을 많이 자고는 하던데, 잠이 별로없는 나에게는 엎드려있는건 맞지앉았다.

동이트는 아침의 넓은 운동장에 너가 있었다.


KANG DANIEL 

12


너의 유니폼을 보고 이름을 알게됬다. 1학년 야구부주장 강다니엘.

너는 이른 새벽마다 학교중앙 운동장에 있었다.

새벽이슬이 내린 잔디바닥을 뛰고 있는 너를 보고 있으면, 심장의 울림이 귓가에 맴돌았다.

등이 땀으로 젖어가며 나이에 맞지않게 선이 굵은 등근육을 보고 있자면 괜시리 얼굴이 붉어지곤 했고, 훈련중에 장난치는 너는 개구장이 같은 모습을 보였다.

중앙운동장에서 몸을 풀고 학교 뒤 야구부훈련장에 가는 너를 따라 내 시선이 옮겨가곤했다.

너를 그렇게 2년을 보다, 3학년이 되어 같은반이 되었다. 


나의 머리에 너의 손이 얹힌 그날, 

나는 너에게 화가난것이 아니다.


숨막히는 학교생활과, 따돌림사이에서 너는 도피처였다. 

훈련의 양이 많은 너는 학교에 소문따위에는 관심이없었다. 당연히 나의 관한건 알지 못했을 거고, 너를 바라볼 때의 나는 순수한 하성운일 뿐이였다. 같은반이 되었을 때도 너를 가끔이나마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아이돌을 처음 만난 팬처럼 순수하게 바라보는 마음이었다.

그런 나에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진 그날은, 최악이었다. 

누군가를 조롱하는 것은 티가 나는 법이고, 나는 숨기고 있었던 하성운의 밑바닥을 보여줬다. 


점심시간에 손을 보고있던 너를 보고 뒤돌아 나온 그때에도, 

나는 너에게 화가난것이 아니다.


한결같이 미련한 나는, 그의 친구가 나에관한 소문을 얘기를 직접적으로 얘기하기 전까지도 학교에서 나의 위치가 어떤지 모르기를 바랐다. 손을 바라보고 있는 너를 볼 자신이 없어 도망치듯 교실을 벗어났었다. 쓰지않는 빈 교실에서 창문밖을 보면서 예전을 추억했다. 잠시나마 같은 반이되서 좋아하던 내가 한심했고, 나 따위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가져선 안될 더러운 감정이었고, 더군다나 그 상대가 너인게 미안했다. 나는 너나, 너의 친구에게 화가나지않았다. 이것밖에 되지 않는 내자신에게 화가났다.


"미안하다, 반장."


너가 언제 왔는지도 모를만큼, 자책하고있었다.

그런 나에게 먼저 다가와 사과하는 너를, 

나는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가 있을까. 








"반장, 무슨생각을 그렇게 하니, 정리마치고 문단속하고 가라."

요새들어 너를 생각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내가 이러는게 장마때문이거나, 고3의 압박때문이라고 믿고싶다. 내 노트에는 쓰다만 필기가 지렁이 처럼 구불구불 이어져있었다. 

어제와 같이 필기구를 가방에 쏟 듯 밀어넣었다. 늘 하던 교실 뒷정리를 하고 집에 가면된다. 

일어서서 뒤를 돌아봤을 땐 아직, 집에 가지않은 무리가 있었다. 

나를 처다보면 웃고있는 애들의 의도가 잘 느껴져서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쟤 봐, 우리보고 한숨쉬는거 봤냐?"

니엘이 자리에 앉아, 책상에 다리를 꼬고 있는 권미주. 

나의 아버지가 돈을 학교에 기부해서 들어왔다고 소문이 났지만, 사실 저 여자애 소문이 나한테 뒤집어 씌워진거라고 하는게 더 옳다고 봐야할 정도이다. 성적이 바닥을 치는것과, 고3과 맞지 않게 아이들을 모으고 다니며 괴롭히는 그녀이다. 무서울 정도로 자기가 찍은 남자에 집착이 진한 그녀는, 니엘이가 모르게 접근하는 사람들을 저런 식으로 괴롭히고 떨어져나가게했다.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해서 자기가 원했던 사람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자기가 갖기 못하겠다면 누구도 가지지못하게 하는 심리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다니엘한테 꼬리치니깐 좋아?"

비아냥 거리면서 다가오는 권미주는 말을 하면서 내 앞까지 다가왔다. 기분나쁜 향수 냄새에 숨이 막혔다. 고3, 그녀에게는 고3의 향이 없다.

그녀의 어색한 얼굴처럼 무엇인가 부자연스럽고, 누군가를 따라하는 느낌만 날뿐.

꼬리를 친다는 저말이 권미주에게 들어간 것을 보니 학교 곳곳에 권미주의 심복들이 숨어있는가보다. 

다니엘에게 접근하거나 관심있는 학생들이 줄줄이 걸러지는 것을 보면 보통 노력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얘 봐, 이쁘장하게 생겨먹었네. 머리만 길었으면 남자인지 여잔지 모르겠다 야."

비꼬면서 권미주는 친구들을 보며 크게 웃었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교실에 어울리지 못하고 어긋나있다. 나를 깍아내리면서 희열을 느끼는 듯 종종 내 머리칼을 만지면서 머리카락도 여자애 같다며 비웃음을 날렸고, 동시에 더럽다는 둥, 얼마나 굴렸나며, 욕지거리를 내뱉는것도 잊지않고 함께 뱉었다. 상대할 가치가 없음에 가방을 등에 매고 나가려는 나를 권미주가 막아섰다. 

내 뒤에서 두명의 여자애가 가방을 휙 낚아채자 잠깐 휘청거렸다. 


"어디가려고, 언니가 할말이 있는데 잠깐만 멈춰볼래?"

아무리 성별이 달라 힘의 세기가 차이 난다고 해도 1대3은 무리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역시, 학습은 무섭다더니 머리속에서 계산을 하고있다.

맞서싸울 생각은 안하고, 그저 어떻게 맞거나 어떤 욕을 들을까하는 생각에 나는 웃음이 나온다.


"얘봐, 미쳤나봐 웃는거봐, 완전또라이네."

내 웃음소리가 권미주가 반응한다. 내 웃음이 그녀를 자극시키게 했나보다.




"너네 뭐하냐?"

뒷문에서 나는 소리에 동시에 4명의 머리가 돌아갔다.

문에 서있던 니엘이는 몸을 삐딱하게 문에 기대어 처음보는 눈을 하고 권미주를 처다봤다.

성큼성큼 큰 발걸음으로 걸어오던 너는 이윽고 여자애들 손에 들린 가방을 뺏고, 내손을 잡았다.


"한번만 더 얘 건들이면, 여자건 뭐건 가만안둔다."

차갑게 내리깐 목소리에 일순간에 분위기가 낮아졌다. 

낮은 음성으로 으르렁 대듯 경고하는 니엘이를 처다봤다. 

내가 괴롭힘을 당할 때 누가 나의편을 들어주거나, 구해준적은 처음이다.

생소한 광경에 잠깐 생각이 멈췄다. 너는 나에게 이런것들을 자주 느끼게 만들었다.

냉정한 나를 당황하게 한다거나, 말문이 막히게 하는 그런류의 것들을.


"같이가려고 교문에서 기다렸어. 집에가자."


권미주에게 했던 행동과 나에게 하는 행동이 다른 니엘이의 행동에 그녀의 친구들이 눈치를 봤다.

손이 잡힌채로 돌아서서 뒷문으로 끌려가다싶이 나가는 나와 니엘이 뒤로 황당한표정의 권미주와 친구들만 덩그러니 남았다.




"저,,저기 니엘아, 이제 손.."

"아,미안."


본관까지 손을 놓지않고 걸어왔다. 니엘이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으며 웃어보였다.


"고마워 니엘아."

여자애들에게도 괴롭힘을 당하는 내가 얼마나 한심해보일까 하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앞섰다. 

정말 보여주기싫은 것만 골라서 그에게 보여주고 있다. 


"나, 너 기다렸다. 여기에서"

교문앞까지 걸어오자, 너는 내게 문득 이말을 했다.


"너랑 같이 가는게 좋아서, 훈련끝나자마자 기다리고있었어. 성운아."

대답을 하지않아도 너는, 너의말을 했고, 내가 할 수 있는건 올려다 볼 수 있는거 밖에 없다. 

내가 널 처다볼 때면 항상 너는 빙그레 웃어보였고, 그때마자 심장소리가 귀에서 들렸다.


"그렇게 처다볼때마다. 매번 간지럽다 여기가."

자기 가슴을 눈짓으로 말하는 너를 처다보다 고개가 또 바닥을 향해 숙여졌고, 얼굴에 열감이 오르는걸 보니 빨개질 내얼굴이 상상이간다. 빨개진 내얼굴은 너무 못나서 봐주기 싫은데..

옆에선 얼굴이 체리같다며 크게 웃는 너 때문에, 얼굴이 터져 녹아버릴 것 같았다.


익숙하게 집앞에 나를 데려다준 니엘이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갈때 까지 나를 보고있었다.

집에 가라고 손을 휘저어도 끝까지 들어가는 걸 보겠다며 버티고 서서 가지않았다. 

집으로 들어가 곧장 내방으로 뛰어갔다. 

내방 창문은 니엘이가 가는 뒷모습을 점이 될때까지 볼 수 있었다.

어슴푸레한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니엘이의 뒷모습이 가슴을 간질인다.












몇일 뒤, 너는 내게 해서는 안될 말을 했다.











"나는 니가 좋아."

너는 어떤 의미인줄 알고 내게 말했을까.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노래와 같이 들어주세요.

오타를 보이는대로 수정하지만, 태생이 오타 대마왕이라 괴롭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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