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어린아이였다. 모진 죽음을 감내하기에는 너무나 어린아이였다. 한때 전장의 희망이자 민중의 영웅이었던 아이는 검고 탁한 욕심에 의해 희생되었다. 수많은 전쟁의 칼날도 축복을 받았다는 아이를 상처내지 못했으나, 결국 그를 죽인 것은 누구도 아닌 그의 주군이었다.

아이는 작았다. 그 가슴에 꽂혀있는 서슬퍼런 칼날은 작은 몸에 비해 너무나 크고 묵직했다. 왕의 눈동자만큼이나 푸른 검에 꿰뚫린 시신은 수습되지 못한 채 왕궁 앞에 나뒹굴고 있었다. '들판에 버려두어 들짐승과 날짐승의 먹이로 두어라' 차가운 명령이었다. 분노가 제게 미칠까 겁이 나 쉽사리 데려가지 못한 몸뚱이가 수레에 실렸다. 소년의 시체를 마주한 성밖의 백성들은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며 영웅의 죽음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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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20년. 20년의 세월 동안 그를 죽였던 왕은 가신들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또 그 왕을 죽인 자도 욕망에 의해 죽었다. 나라는 혼란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많은 것이 변했고 또 변하지 않았다. 아이의 시신이 버려져있는 들판의 영주는 변하지 않은 축에 속해있었다. -그래, 그러니 지옥에서 돌아온 아이가 그를 만나러 온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죽음에서 돌아왔군."
"놀라지 않으시네요."
"나사로도 주님 덕에 무덤에서 걸어나왔는데, 계시를 받은 네가 살아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지."


아이는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맑고 순전한 이목구비를 가만히 바라보던 영주는 열린 창문을 등지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복수할 건가?

아니요. 이제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지독히도 슬픈 눈이었다. 영주는 그만큼 아프고 젖어있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아이는 고개를 돌려 쇠락한 왕도가 있는 방항을 바라보았다가, 곧 다시 고개를 틀었다.


"모두가 행복해지길 바랐는데... 그래서, 기꺼이 죽었는데."
"인간은 결함이 많은 피조물이니까. 네 생각보다 멍청하고"


조금 웃은 것 같기도, 얼굴을 찡그린 것 같기도 했다. 영주는 그 꼴을 침통한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되물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이곳을 떠나려고요. 너무 아파서 남아있을 수가 없어요."
"잘 생각했다. 내 사람 중 하나를 데려가. 도와줄 거야. 돈과 옷도 줄테니 그것들도 가져가고."
"돈은 필요 없어요. 나머지 것들만 빌려주세요."
"그냥 줄거야, 톰."


그 때, 너를 지키지 못했으니까. 그것에 대한 사과라고 생각해. 아이는-톰은 웃었다. 이번에야말로 온전한 웃음이었다. 자책하지 마세요. 내가 선택한 죽음이었는걸. 구불거리는 갈색머리가 황혼에 비친다.


"염치 없지만, 나를 기억해줄래요?"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을 걸."
"고마워요, 로버트."


그와 영주의 마지막 대화였다. 톰은 로버트가 잠든 새벽에 떠났다. 톰은 어린 노예를 데려갔고, 추레한 옷을 입고 나갔다 했다. 돈은 가져가지 않았다. 정말로 마지막 순간까지 소년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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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죽을 수도, 죽음을 잊을 수도 없다고 했다. 가혹한 저주였다. 톰은 스스로 이 생이 축복 보다는 형벌에 가깝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선물 받은 아이의 손을 꼭 쥐었다. 모두를 지키려 갑옷을 입었지만 결국 아무도 지키지 못했으므로, 이 아이 하나만은 지켜야했다.

톰은 분명 인간이 아니었다. 지금의 그에게 시간과 공간은 아무 의미가 없었고, 인간의 범주에서 한참을 벗어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죽음을 수 번씩 겪어도 톰은 슬프게도, 변하지 않았다. 마주 잡았던 아이의 손이 노인의 그것이 되고 다시 태어난 다른 아이의 손이 늙어가도 톰의 손은 어린 날의 모습 그대로였다. 정말로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불멸의 삶을 끝낼 수 있는 것- 그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반려 뿐이라고 했다.


그의 가슴팍에 여전히 남아있는 푸른 검을 볼 수 있는 단 한사람이, 그 검을 뽑을 수 있다고 했다. 검이 사라지면 무로 돌아가 평안하리라. 한때 소년에게 계시를 내렸던 누군가의 말이었다. 지독하게 쓸쓸하고 낭만적인 저주네요. 톰의 손을 쥐었던 아이의 감상이었고, 톰은 그 감상에 동의했다.


수백년의 시간이 흐르며, 많은 것이 변했다. 세상은 더 혼잡해졌고 여즉 그의 반려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가슴에 꽂힌 비수를 아무도 볼 수 없었기에. 그는 살면서 많은 이름으로 불렸고 종래에는 누구도 그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었다.

톰은 항상 말간 얼굴의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인간을 사랑했으며, 그가 아끼는 것들을 지키려 무던히도 애를 쓰는 존재였다. 당신은 그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인간에게 실망하지 않았나요? 아이-톰이 오래 전 함께했던 그의 후손-의 물음에, 톰은 그저 웃었다. 겨우 그런 이유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사랑스러워서. 짤막한 대답에 아이는 더 질문하지 않았다. 그는 분명 너그러운 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치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살아간다는 표현은 틀린 것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톰은 스스로 살아간다고 여기려 하였다- 비록 관통당한 육체의 환부가 고통스러워 신음하는 일이 잦았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는 변화된 세상에 빠르게 적응했고, 이제는 에드 시런 노래를 들으며 밤거리를 거닐다 편의점에 들어가 콜라를 사오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그는 이제 검보다 총이, 무력보다 지성이 압도하는 세계를 분명히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네 반려는 언제 찾아온대?"
"그거야 나도 모르지."
"영원히 안 찾아오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사신이 머무르는 장소는 음습하지 않다. 되려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톰은 이 장소를 좋아했고 사신도 좋아했다. 그녀는 퉁명스럽지만 실제로는 꽤 다정한 성격이었고, 차도 그러했다.


"그러면 어쩌냐. 내가 너랑 안 지가 300년 정도긴 하지만, 나도 영원히 남아있는 건 아닌데."
"글쎄, 신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아니면 친구가 될 다른 존재를 찾아본다던가."


나도 참 이상하지, 젠다야. 이 정도 살았으면 외로움같은 건 타지 않을 때도 됐는데. 톰이 찻잔을 손으로 매만지며 쓸쓸하게 말했다. 그녀-사신은 그가 지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외롭지 않은 존재는 없어. 아마 신께서도 그러실 걸. 그녀는 위로 대신 다른 말로 응수했다.


"그리고 그 이상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 좀 그만해."
"왜? 괜찮지 않아? 내가 너를 만나기 50년 전에 만났던 사람의 이름인데, 되게 착한 아이였어. 그리고, 이 이름 잘 써먹고 있잖아?"

"그야 사회적 이름이 필요하긴 하고 난 이름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까. 좋아서 쓰는 건 아니라고."


오, 알았어. 젠다야. Z-e-n-d-... 그는 곧 날아온 쿠션에 의해 입술이 막혀야 했다. 저 장난 좋아하는 고블린 같으니라고. 톰은 그 말에 눈을 휘며 웃었다. 고블린은 몇백년 전 사람들이 톰을 칭했던 것의 이름이었고, 사신이 톰을 그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나름 그녀가 그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중요하게 할 말 있으니까 들어."
"응. 뭔데? 나 경청 잘해."
"그를 찾았어."
"...누구?"
"너를 죽였던 사람. 그의 환생을 찾았다고."


톰의 입가가 일순간 굳었다가, 곧 다시 휘어졌다. 그래,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그가 찻잔에서 손을 떼어내고, 겉옷 주머니로 손을 넣는다. 손끝에서부터 밀려오는 어떤 애틋함 비슷한 감각을 느끼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사신은 조금 의아하다는 눈이었다. 그게 끝이야? 어떤 새끼냐고 안 물어봐?


"잘 살고 있겠지. 만날 생각 없어."


인간이라면 견디지 못했을 시간동안 미움과 원망은 이미 흐려진지 오래였다. 아니, 애초에 미워한 적도 없었다. 그를 위해 죽겠다 다짐한 건 톰 본인이었으므로. 오히려 안심했다- 그 사람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나처럼 고여있지 않고 흘러가는구나. 하지만 그 얼굴을 마주할 용기는 없었다.


"이번 생에서는, 그 사람이 나를 모른 채 살도록 해주고 싶어."


내가 그의 고통이었으니까. 사신은 자신도 한 때는 인간이었지만 너를 이해할 수는 없다며 일갈했다. 실로 마음 약한 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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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번 생이야말로 자신을 모르게 해주고 싶었다. 불멸의 존재를 인간이 안다해서 좋을 것은 없었고, 그에게 전생의 슬픔을 다시 안겨주고 싶지도 않았다. 톰은 그래서 자신을 죽인 자를 찾으려 하지 않았으며 영원히 만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톰을 불사의 존재로 만든 신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더 잔인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떻게 이럴 수가... 소년은 연신 중얼거렸다.


"대답해. 당신 뭐야?"
"...어, 저는 그냥 지나가던 사람..."
"되도 않는 소리 말고. 귀신인 줄 알았는데 만져지고, 온기도 있잖아."
"귀신이라뇨. 전 사람인데..."


톰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차마 납득할 수 없었다. 저 칠흑같은 머리카락, 시리게 푸른 눈동자, 창백한 피부는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었다. -그래, 그가 섬기고 사랑했던, 그리고 첫 번째 생을 살아가던 그를 죽였던 사람의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부정하고 싶은 사실은,


"그러면, 당신한테 꽂혀있는 이 검은 뭔데?"


-그가 톰의 반려라는 사실이었다.

이번에도 나는 당신에게 죽는구나. 이번에도, 당신은 나를 죽이겠구나. 또 우리는 서로 때문에 고통 받겠구나. 톰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을 원망했다. 이 삶은 분명히 벌이었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벌.





여기서 톰이 도깨비고 에이사가 도깨비 신부. 근데 서양에 도깨비같은 존재가 없어서 대충 얼버무림... 에이사는 전생에 톰을 죽였던 왕이기도 한데 자살하지 않아서 저승사자는 되지 않았음. 폭군 에이사 너무 짱... 톰은 잔다르크 같은 존재였고.

톰이 19년 전에 사고로 죽어가던 여자를 살려준 적이 있었는데, 그 뱃속에 들어있던 게 하필 환생한 에이사였고 그래서 도깨비 신부가 된거임. 그러니까 반려ㅇㅇ 에이사는 그 때문에 귀신을 보면서 살았고 귀신들이 자기를 신의 반려라고 자꾸 부르는 걸 듣고 살았음.

그런데 그러다 우연히 톰을 만났고 처음에는 귀신인 줄 알았는데 부딪쳐지고 애가 체온도 있는 거야. 그래서 나중에 수소문해서 다시 만나고 톰이 자신의 반려라는 걸 알게됨. 톰은 에이사에게 너만이 이 검을 뽑을 수 있고 그래야 내가 편안해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에이사가 그 검을 뽑으려고 했는데 아직 에이사가 톰을 깊이 사랑하지 않아서 뽑지 못함.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에이사가 톰을 깊이 사랑하게 되고 톰이 몇백년 전 자신의 주군에게 죽었다는 것도 알게된다. 톰도 에이사를 사랑하지만 에이사의 전생이 자꾸 떠올라서 고통받는데 에이사는 모르니까 톰 혼자 끙끙 앓지.

그러다 나중에 저승사자 젠다야가 왕의 환생인 에이사가 톰의 반려라는 걸 알게 되고 톰이 그래서 힘들어한다는 것도 알게됨. 그래서 젠다야가 에이사에게 전생의 기억을 되돌려주고 에이사는 톰을 죽인 사람이 자신이라는 거랑 검을 뽑으면 톰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충격 받아서 톰을 떠나려고 하는데 톰이 그건 전생의 일이고 내가 선택한 일이기도 하다면서 에이사를 설득함. 그래서 둘이 질질 짜면서 눈물의 키스도 하고 떠나려던 에이사는 다시 톰 곁에 남는다.

그런데 에이사가 이제 검을 뽑을 수 있는데도 뽑지 않으니까 자꾸 죽음이 닥쳐옴. 톰이랑 젠다야가 그 죽음들을 열심히 막는데 점점 한계를 느껴서 결국 톰이 제발 검을 뽑으라고, 이번만은 너를 제대로 지키고 싶다고 부탁해서 결국 에이사가 톰 검을 뽑고 톰은 무로 돌아가는데 그게 완전히 소멸한 게 아니라 원작처럼 연옥에서 떠돌다가, 10년 후에 다시 인간계로 돌아간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톰에 대한 기억을 다 잊었는데 전생의 기억도 있던 에이사는 톰을 잊지 않고 기다렸던 거! 그래서 둘이 다시 만나고 검도 없겠다 진짜 걱정없는 연애 하고 그 전에 검의 크리피함 때문에 못 쒔던 잣죽도 쑤고 그러는데 아홉수가 돌아온 에이사가 결국 사고로 죽어버림.

톰은 그런 에이사가 환생할 때까지 기다리는데 수십년 후 환생한 에이사가 톰을 먼저 찾아옴. 망각의 차를 먹지 않아서 톰을 기억하고 있었던 거. 그래서 둘이 이번에는 원없이 사랑하다 에이사가 늙어 죽을 때 신이 톰한테 너 이제 벌 다 끝났으니까 천국 가라고 해서 에이사랑 톰 둘이 손잡고 천국 가는 게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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