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on Natale





12월 24일 밤 11시 59분





W. 이소루





 인간들은 참 신기했다. 성탄절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들 상기된 얼굴로 선물을 준비하고, 집안을 꾸미고, 노래를 부르며 길거리를 녹색과 붉은색으로 가득 메웠다. 평생토록 자신을 따라다닌 두 색이 보기 좋게 뒤엉켜 가로수들과 건물들을 장식한 광경을 보는 것은 퍽 즐거웠다. 가지런히 묶은 머리 아래로 차가운 바람이 목을 스쳐지나갔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가게에서 종소리가 섞인 캐롤이 흘러나왔다. 새빨간 벨벳의 천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리본이 가로등의 노란 불빛을 받아 예쁘게 반짝거렸다. 꼭 누구의 망토자락 같아서, 로키는 혼자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마 그 누구는 지금쯤 소파에 드러누워 어제 사온 감자칩을 먹으며 뒹굴거리고 있지 않을까. 토르는 늘 겨울이 되면 게을러졌다. 아스가르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영하의 기온과 칼바람은 에시르가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고, 토르는 낙엽이 전부 떨어질 때 쯤 부터, 두꺼운 이불을 둘둘 말아 덮곤 난로에 가까이 붙어있었다. 요란법석을 떨며 집안을 돌아다니는 거대한 덩치가 갑자기 얌전해져서 이불에 파묻힌 모습을 보는 것은 퍽 즐거웠다.

 

 카키색의 트렌치코트 주머니에 손을 밀어 넣은 로키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기운과 만난 숨결이 하얀 입김으로 몽글몽글 피어났다. 팔목에 걸린 종이 쇼핑백이 걸음걸이마다 허벅지 근처에 스치며 가볍게 흔들렸다. 갈색의 빳빳한 포장지로 가지런히 싸인 상자도 쇼핑백 속에서 함께 흔들리며 제 존재를 나타냈다. 선물을 받는 토르의 얼굴을 상상한 로키는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아마 다정한 제 형은 무엇을 선물 받아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을 것이었다. 온온하고 가벼운, 적당히 단 감정이 로키의 가슴을 따듯하게 물들여갔다. 미드가르드에 내려와 평온히 적응한 이 일상들은 몇 천년만에 주어진 대가 없는 행복이었다. 세 블록만 걸어가면 집이었다. 자신과 토르의 보금자리, 단촐하지만 따듯하고, 편안한 집. 로키는 새삼 코끝이 찡해지는 것 같아, 괜히 코를 훌쩍거렸다. 아무런 불안감 없이 안주 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평생을 버려질까 두려워했던 로키에게 큰 의미였다. 들뜬 분위기의 거리를 걷는 로키의 모습에서는 더 이상 과거의 쓸쓸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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