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독고일화적사홍(獨孤日火赤獅紅)



 2187년. 7월 여름. 71대 청룡 사망 16개월 후.

 현재.



 "이거 왜이래?"

 "아니지. 사홍아. 반대로."

 "아- 어렵네."

 툴툴거리면서도 엉망이 된 매듭을 다시 풀어낸다. 다시금 종이에 적힌 순서를 확인하고는 끈을 제대로 교차시켰다.

 오늘은 사홍의 휴일, 선선한 날씨 덕분에 집 마루에 나와 자신의 새아버지와 매듭 장식 만드는 법을 배우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원하는 모양이 나오지 않는지, 사홍은 얼굴을 찡그리며 부엌 쪽을 흘끗 본다.

 "아빠는 장 보고 왔어?"

 "응. 이따가 같이 저녁 먹자."

 "좋아! 이 방향이 아닌가?"

 그리고는 자신이 만든 매듭을 들어 올려 보여준다. 열심히 만들기는 했는데, 양쪽 모양이 똑같지가 않다.

 "그래. 또 틀렸어."

 "그럼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다."

 이윽고 이어지는 정적. 짜증이 잔뜩 난 사홍이 매듭을 완전히 풀어내고 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새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사홍아. 주작님께서 정말..."

 "아냐!! 그거 백호 가문에서 누명 씌운 거야!"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홍이 벌컥 화를 낸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마루에서 자는 중이던 자신의 사자 수호신이 놀라 벌떡 일어났다.

 "미안."

 새아버지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본 사홍이 사과를 건넨다. 자신의 사자에게 마당으로 가 좀 돌아다니라는 듯 손짓하고는 슬슬 눈치를 보고 있다. 하지만 새아버지는 그저 다시 고개를 숙이고는 만들던 매듭을 마무리 지을 뿐이다.

 "네가 말하는 걸 들을 때마다, 항상 백호 가문이 엄청 나쁜 것 같구나."

 실제로도 나쁜걸요. 사홍은 입을 꾹 다물며 그 말을 삼킨다. 말해도 어차피 믿어줄리 없다. 사람들에게 백호 가문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사방신 주작에 대한 감정을 이길 수도 없고.

 이젠 누명까지 쓰고 있으니 홍련은 이 대륙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겠지. 그렇다고 누가 청라님을 죽인 건지도 섣불리 말할 수 없기에, 사홍은 화를 꾹꾹 참아내고 있을 뿐이다.


 사고사다. 살해당하신거다. 많은 의혹과 추측이 오갔지만, 항상 법칙의 보호를 받는 사방신이 어떻게 죽을 수 있겠는가?로 돌아오곤 했다. 그래도 다들 사고사로 믿고 있는, 아니, 믿고 싶은 추세였는데, 이젠 아니다.

 류호가 공식 석상에 나와 홍련을 정확히 지목했으니까.

 이유도 참 적절하다.

 "사방신은 법칙의 보호를 받습니다만, 신과 신 사이에는 그 영향이 없을 수도 있죠. 특히 사방신의 능력이 상극이라면 얼마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얼음'이었던 전 청룡과 '불'인 현 주작 말입니다. 특히, 주작은 옛날부터 사방신 중에 최고가 되겠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주작에게는 최근까지도 최고의 위치에 있던 전 청룡님이 제일 거슬리는 존재였겠지요."

 증거도 있다 한다.

 "기차가 떨어졌던 곳 철로가 일부 녹아있었지 않습니까? 게다가 전 청룡님은 온 몸이 괴사되고, 얼어붙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위험이 닥쳤기에, 자신을 지키려고 온 몸을 얼려야 할 정도였을까요. 여태까지보다도 이례적으로 힘이 강한 이번 주작의 불 정도가 아니어서야..."


 사실, 몸의 괴사는 화상말고 동상의 증상이기도 하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지.

 누구나 좀 더 사랑하고, 믿음이 가는 쪽으로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온 국민, 특히 청룡시가 사랑했던 청라와, 이 대륙의 큰 기둥이 되어주고 있는 백호 가문에게로.

 작은 의구심이 들다가도, 더 크게 기울어지는 쪽으로 동조하기가 쉬운 법이고.

 그러니 누군가가 청라를 죽인 게 맞다면, 이젠 그 살인자를 원망하고 비난하며, 저주를 퍼부을 시간이었다.

 바로 그 시간대상을 류호가 제공해준 것뿐이다.

 살인자가 홍련이라는 거짓말을 그럴듯한 껍질로 포장해 내뱉음으로써.


 "하지만 나도 주작님께서 그랬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

 그 말에 사홍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래도 모두가 그걸 믿고 있는 건 아닌거다.

 "네가 항상 말해왔던 주작님을 생각해보면, 그럴 분은 아니신 것 같거든. 하지만 전 청룡님께서 돌아가신 게 단순한 사고는 아니었던 거지?"

 새아버지의 질문에 사홍은 말없이 미안한 표정을 담아 고개만 끄덕였다. 뭔가 명확한 대답을 바라는 것 같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말해줄 수가 없다. 그래도 새아버지에게는 충분한 대답인 듯 했다.

 "그래. 이건 시제품이야. 내일 출근할 때 가져가서 확인받으렴."

 그렇게 말하며 방금 완성한 매듭 장식을 사홍에게 건넸다. 자신이 만든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복잡하고 완벽하다. 그래야만 했다.

 홍련이 주문 제작을 의뢰한, 8월의 주작제 때 등불에 달 장식용 매듭이니까.




 다음 날. 오전.


 "주작님!!"

 사홍이 천관전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소리친다. 홍련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으니, 궁 온 곳을 돌아다니며 애타게 부르고 있다.

 "주작님!"

 행정부서 문을 열자마자, 신관들과 함께 서류를 보며 대화하고 있는 홍련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하얀 반팔 저고리와 붉은색 스란치마를 입은 홍련의 허리에는 최근에 만들어줬던 연노랑색 매듭 노리개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다음에는 어제 배운 매듭 방식으로 보석과 향갑도 달아서 새로운 노리개를 만들어줘야겠다고 결심하며, 사홍은 방긋 웃었다. 

 "련아!!"

 궁 안의 신관들이 다 들릴 정도로 외치는 사홍. 방금 신관 오전 훈련을 마치고 샤워한 직후라 갈색의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문 앞에 서 있다.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때문에 입고 있는 붉은색의 저고리까지 젖어 있었다.

 부서 안의 신관들도, 홍련도, 달려오느라 숨을 헐떡이는 사홍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 가만히 서 있다. 다들 무슨 일이라도 났나 싶어 긴장한 채로 사홍을 주시하지만,

 "우리 행운의 부적 만들러 가야해!"

 막상 사홍의 입에서는 나온 말은 그저 허탈할 뿐이다. 홍련도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매출 장부를 신관들에게 돌려주고는 사홍에게로 걸어갔다.

 "홍아, 머리는 말리고 와야지!"

 "빨리! 궁궐 개장하기 전에 끝내야 해. 그 다음 일정도 있고! 오늘은 새벽까지 일정이 빡빡하게 있는 날이잖아."

 "맞다. 그렇지. 부적은 나 혼자 가도 돼! 홍이는 리허설 순서랑 동선 확인해야지."

 "응응. 나는 련이...." 

 사홍이 멈칫하더니 행정부 신관들이 자신들을 멀뚱멀뚱 바라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다. 곧장 자세를 바로 잡고는 소용없지만 젖은 머리카락도 한 번 쓸어 넘기며 나름 정리하더니, 존대로 말을 바꾼다.

 "오, 아니, 주작님 옆에서 확인하면 됩니다."

 홍련은 그런 사홍의 행동이 재미있는지 활짝 웃었다.

 "아하하하!! 그래! 얼른 가자."



 "오늘은 많이 만들어야해?"

 "주작님. 오셨군요."

 기념품점 뒤편의 작은 궁 안, 사무실에서 행운의 부적을 관리하는 신관들이 홍련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그 중 가장 직급이 높은 신관도 홍련의 질문에 답하며 고개를 숙이더니, 곧장 앉으라고 자리를 마련해주고는 말을 이었다.

 "오늘 만드셔야 하는 수량은 어제와 비슷합니다."

 "알겠어. 요즘은 별로 안 사가나 보네. 곧 주작제인데..."

 홍련이 끄덕이며 자리에 앉고, 사홍은 그 옆으로 의자를 갖고 와 앉고는 서류를 펴 순서를 확인하면서 둘의 대화를 듣는다.

 신관은 기념품점에 있던 진열대를 가지고 와 홍련 옆의 책상에 올려놓고는 자신도 그 앞에 앉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그래도 최근까지는 줄서서 사갈 정도로 주작의 행운 부적이 인기였는데..."

 "6월 중순까지는 그랬었지. 다들 어지간히도 나를 싫어하나봐."

 그 말대로, 최근에는 주작궁에 사람들이 많아진 편이였다. 이전에는 화려하다는 주작궁을 찍기 위해 잠깐 들르거나, 주기적으로 기도하러 오는 일부의 시민들 정도였다면, 요즘은 관광객들로 문전성시였었다. 그렇게 남아돌던 행운의 부적도 매일 매진 행진이었다.

 정확히, 홍련이 누명을 쓰기 직전까지는.

 조금 슬픈 표정의 홍련은 양 손을 펴고 손바닥 위로 수십 개의 작은 불꽃을 피어올린다. 그 불꽃은 곧바로 깃털 모양으로 변형되고, 작은 유리병에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아지더니, 점점 완전한 붉은색 깃털로 굳어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깃털들을 책상 위의 넓은 판에 쏟아놓으면, 부적 담당 신관이 장갑을 끼고 깃털을 집어 하나하나 조심히 진열대에 진열해놓았다. 그렇게 진열대가 가득 차면, 옆의 보관함을 열어 나머지 깃털을 넣었다. 진열대에서 깃털이 판매되면 보관함에서 꺼내 새롭게 진열하기 위해서.


 행운의 부적은, 모든 사방궁궐에서 파는 최고 인기 기념품이었다.

 이름에 걸맞게 실제로 '하루를 기분 좋게 보낼 수 있는 정도의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이다. 신호등이 제때에 바뀐다거나, 예상치 못하게 작은 소득을 얻는다거나 하는 소소한 행운.

 주인이 가지고 다닐 때만 행운의 양이 소모되어, 다 사용되면 사라진다. 여러 개를 들고 다녀도 순차적으로 하나씩 소모될 뿐이다.

 이건 사방신의 힘을 응축시켜 물리적인 형태로 만들기에, 색이나 형태에도 약간씩 차이가 있고, 궁궐마다 모양이 달랐다.

 주작은 붉은색 깃털, 현무은 초록색 등껍질, 청룡은 푸른색 비늘, 백호은 금색 발톱 모양.

 만들어진 부적은 궁궐 기념품점에 진열되고, 구매할 때 진열대에서 원하는 색이나 모양을 고른 후, 작은 유리병에 담거나 장신구 혹은 열쇠고리 등,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가공할 수 있었다.

 판매하는 신관들에게 원하는 모양을 말하면 무료로 해주는데, 반드시 이름도 새겨야 했다. 새겨진 이름의 당사자가 가지고 있어야 부적의 행운이 소모되기 때문에.

 따라서, 구입 개수 제한이 있었다. 하루에 한 명당 하나씩. 선물용도 최대 5개에 동일한 이름은 불가. 게다가 판매하는 부적은 사방신이 만든 양에 따라 한정적이고 유동적.

 그러니 부적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일이 허다하고, 만약 줄을 서도 못 사게 되는 경우도 빈번했다.


 하지만 지금의 주작궁은 부적이 남아돌고 있었다. 거의 매일 수량을 채워 넣을 때가 그리워질 정도다. 

 "끝! 이건 내가 가져갈게!"

 홍련이 만족할 만큼 부적을 만들고는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손 안에는 깃털 세 개가 쥐어져 있다.

 "네. 수고하셨어요. 이름은..."

 "홍이가 해줄 거야!"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바라보기에, 사홍이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네. 그럼 저는 개장 준비 좀 하겠습니다."

 신관도 웃으면서 진열대를 기념품점에 돌려놓기 위해 들어 올리더니, 사무실을 나갔다.

 홍련도 그 신관을 따라 기념품점으로 이동해 돌아다니고 있었다. 청소와 정리 중인 신관들이 인사하는 걸 받아주며, 물건들이 제대로 진열되어 있나 살펴보는데, 어느새 사홍이 그 옆에 와 있었다.

 "련... 주작님. 이제 가셔야해요."

 "그래! 나 이거 가져가도 돼? 사방신 올 때 선물로 줘야해!"

 몸을 돌려 신관들을 향해 주작 다식만 담긴 과자 세트를 여러 개 번쩍 들어 올리는 홍련.

 "네! 괜찮아요!"

 "가져가세요. 주작님."

 그런 홍련에게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신관들이 동시에 답하기에, 홍련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고마워! 홍아, 오늘 리허설은 몇 시부터야?"

 신관들 중 한 명이 금세 창고에서 과자 세트를 가져와 보충하고, 담아서 편하게 가져가라며 봉투를 건네는 걸 대신 받으며 사홍이 답한다.

 "저녁 9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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