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드 오브 히어로즈 요한 테일드x여로드

※ 모든 재앙을 해결한 후, 평화로운 어느 시간선의 이야기

※ 하드 8-16까지 읽고 쓰는 글입니다. 미미한 스포일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 동인설정 및 캐해석 주의

※ 결제선 이후는 간단한 후기와 사담만 있습니다. 해설과 진짜 후기는 추후 게시글로 업로드될 예정이니 결제하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손을 내미시기에 잡았고, 이리로 오라 하시기에 그렇게 했다. 그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밤을 새워 글자를 깨치고, 손이 닿는 데 있는 책은 모조리 읽었다. 그렇게 해서 조금씩, 로드께서 자신을 데려온 이유를 감히 하나씩 짐작해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울렁거리던 심장은 어떤 감정으로 채워져 있었나. 이제야 알아듣게 된 말에 속으로 어떤 대답을 되뇌었던가.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만의 세상을 가졌으면 한다는 말에 그럼에도 그 기반에는 당신이 계시리라 생각했다. 제 모든 선택의 귀결은 로드일 거라고, 자명한 존재의 서열조차 당신을 두고는 뒤틀린다고 되뇌었다. 그런 답을 원하지 않으실 분인 걸 알아, 자신이 그녀의 검이길 원하면서도 모든 걸 바치지 않기를 원하는 그 이기적이면서도 다정한 마음을 알아 그저 웃기만 했다. 누구에게나 상냥한 기사, 선과 정의를 믿고 세상을 사랑하되 그것을 가르친 이에게 눈이 멀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 옳다고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옳을지언정 불가능하다는 걸, 요한 테일드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저의 죄를 고하겠습니다. 감히 신을 사랑한 죄입니다. 자비의 칼을 날카롭게 벼리시어, 그것으로 제게 불멸의 죽음을 주십시오. 못난 심장을 쥐어 터뜨리는 감정을 끊어내어 당신을 사랑하되 사랑하지 말라고 명하십시오. 당신을 만나기 위한 저당에 불과했던 삶입니다. 그러니 그때부터의 모든 나날, 제 삶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감히 그대를 사랑하여, 풍요 속의 빈곤을 알게 된 이 방자한 영혼을 심판하십시오.

나의 로드. 당신을 원하는 마음을 꺾어야만 당신이 원하는 이가 될 수 있다면, 손수 이 마음을 베어내고 나를 정결케 하십시오. 잠든 그대의 입술을 탐했던 이 눈을 멀게 하셔도 좋습니다. 이 사랑의 시작이 당신이었으니 이 사랑의 끝도 당신 것입니다. 부디 내게 또 한 번의 답을 주십시오.

 

[요한로드] Take Me To Church (7) 完

 

두드리자마자 문이 열렸다. 잠들지 못해 파리한 낯으로 저를 맞아주는 그녀를 보며 요한은 마음이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그녀 앞에서는 늘, 표정을 푸는 것보다 굳히는 게 더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그 피곤한 얼굴이 의미하는 바가 명확해 잠깐 입술을 깨물었다. 이러실 거였으면 왜 저를…… 그러나 정제하지 못한 말을 뱉을까 깨문 입술은 저를 가만히 바라보는 시선에 곧 제자리를 찾았다.

저를 침실에 불렀던 그때와 같은 얼굴과 옷차림. 이를 다시 보지 못하리란 생각만으로 여기까지 온 건 아니었다. 그러나 한 침대 위에서 부드러이 마주 안았던 이 몸이 걸어 낸 금제에 불복하는 마음을 고하고, 당신이 바라시는 나는 이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명을 듣기 위해 왔음에도, 홀로 있던 밤 잠 못 이루게 하던 이 모습을 보니 끌어안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로드의 기사 요한 테일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기사답지 않은 말을 전하러 왔다 해도 그 행동에까지 불의를 담지는 못할 것이다. 이 삿된 마음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무례일 테니.

 “요한.”

 “예, 로드.”

그러나 부름에 답하는 그 목소리에는, 짓눌린 마음에서 흘러나온 투박한 슬픔 따위가 비칠지도 몰랐다. 두드리기도 전에 열린 문, 문이 열리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 비쳤던 일말의 화색이 당치도 않은 희망을 부추겼다. 핏기없는 그 얼굴에 감돌았던 온유하고 환한 빛은 시든 꽃을 내려다보며 끝끝내 놓지 못했던 꿈속의 빛을 닮아있었다. 말도 안 되는 기대까지 거는 자신은 우스웠지만 온전히 자신만을 담아내는 그녀의 눈동자가 지극히 사랑스럽다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뒤늦게야 가슴 앞에 팔을 올리고 허리를 숙여 보였다. 이 사람을 끌어안아 버리기 전에.

 “늦은 밤 실례합니다, 로드. 불쑥 찾아와 송구합니다.”

 “…괜찮다, 요한. 일단 좀 앉지.”

그리고 여상히 침대를 두드리는 손길에 요한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로드가 요한을 똑바로 바라보기 전 아주 짧은 순간 동안만. 평소와 같은 호의와 배려겠지만 이제 다시는 그 자리를 꿈꾸고 싶지 않다고 말하려는 제게는 무정하기 짝이 없는 다정함이었다. 그것을 사랑하기에 다시 한번 그녀의 옆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지만.

홀로 있는 밤 느꼈던 거리감보다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하고 느끼는 간극이 더 크다.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있는 사람의 그늘진 눈가를 어루만지고, 당신을 잠 못 들게 하는 것을 베어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진심을 담아 말했던 그 밤이 여전히 이 방의 공기 속에 켜켜이 녹아있을 것인데. 하지만 자신은 그날을 되찾으러 온 것이 아니므로, 그저 자신이 손수 지워냈던 피로가 다시 그녀의 얼굴을 뒤덮었음에 애석한 마음만을 눌러 참을 뿐이다. 허락받지 못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되니까.

 “용건이 뭐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렇군.”

 “그리고 말씀드려야 할 것도 있습니다.”

시선에도 형체와 부피가 있다면 붙들어 자신만 보게 하고 싶었다. 늘 부드러운 기백을 품은 그 눈빛이 흐무러져 보이는 것은 단지 피로 때문일 것이다.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아 로드를 더 피곤하게 만들어서도 안 되겠지만 지금의 저만은 똑바로 봐주셨으면 했다. 다시는 입에 담지 못할 말을, 그녀 앞에 정말로 한 치의 거짓도 섞이지 않은 진심을 들려드리러 왔으니까. 이 역시 당신의 요한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일생의 단 한 순간이라도 그 시선을 독점하고 싶어 다시 한번 그녀를 불렀다. 늘 듣는 호칭이지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로드.”

평소라면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한다든지, 혹시나 실례가 될지도 모른다느니 하는 말부터 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 모든 말이 불필요했다. 분명히 무례지만 그것을 전하고 응당한 대가를 받으러 온 것이니 갈고 닦은 화술도 군주에 대한 예의도 꺼낼 필요 없으리라. 무릎 꿇고 고해야 마땅할 말을 이미 그녀의 침대 위에, 그녀와 같은 눈높이에서 전하려 하고 있지 않나. 이는 분명 자신이 로드께 하는 최초이자 최후의 항거일 것이다.

 “피곤해 보이십니다.”

 “……”

 “그간 제대로 주무시지 못했군요.”

 “…보다시피.”

 “…누군가를 더 들이시진 않았던 모양입니다.”

로드가 요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나 담담하게 맞추던 시선은 곧 아래로 내리깔렸다.

 “…소용없을 테니까.”

 “…….”

똑, 물방울이 떨어지듯 흘러나온 한마디가 위태로이 넘실거리던 요한의 감정 위에 내려앉았다. …소용없을 테니까. 답지 않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엘펜하임에서 돌아온 그 날, 제 방에서 잠들기를 고집하던 그때와 비슷하게 느껴진다면 착각일까. 자신만이 그녀의 유일한 해결책, 특별한 존재인 양 느끼게 했던 그 밤을 상기시키는 목소리가 요한의 가슴을 후벼팠다. 그래서 요한은 더는 참지 않았다.

 “소용이 없을… 거라고요?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

 “제가 그 말씀을 어찌 받아들이기를… 원하시는 겁니까?”

요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부정할 수 없는 감정이 실리려던 목소리를 가라앉히려는 것처럼.

 “먼저 여쭈고자 한 것은 저입니다, 로드. 그러니…”

 “요한……”

 “제 말을 먼저 들어주십시오. 그 후에 하문하신다면 무엇이든 진실만을 고하겠습니다.”

로드는 제게 항상 진실하던 기사가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말해도 아무 어폐도 느끼지 못했다. 서임을 받던 때만큼 결연하나 무척 애틋하고 서글픈 요한의 얼굴을 보고 깨달았다. 그는 제게 해가 될 말은 단 하나도 하지 않을 것임을. 설령 그는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힘주어 쥐다 못해 잘게 떨리는 주먹이, 습기가 어려 반짝이는 은회색 눈동자가 의미하는 바는 아마도 제게는 과분한 진실일 것 같아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로드께서는 얼마든지 다른 이를 방에 들이실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니어도 말입니다.”

 “……”

 “하지만 저 이외에는 부르지 않으셨죠. 그래서 기뻤습니다. 로드께 조금은 더…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아서요.”

방에 들어서고 처음으로 그가 웃었다. 애달픈 미소였다.

 “예. 제멋대로 기대한 것이지요. 누구를 부르고 누구를 내치든 그것은 로드의 권한입니다. 바로 오늘 낮에도 그렇게 말씀드렸지요.”

그러나 그 서글픈 얼굴에 균열이 이는 것은 순식간이다.

 “하지만… 하지만, 왜 저만 부르셨습니까? 왜 제가 아닌 다른 기사는 부르지 않으셨나요? 그날 왜 제 방을 찾아오셨습니까? 어째서 제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처럼, 그렇게……”

더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요한의 눈빛, 표정, 순간 다물린 입술, 말아쥔 손 그 모든 곳에 배어 나온다. 묵혀둔 감정의 이름이 한 가지가 아니라서, 아니, 사랑이란 본디 스펙트럼과 같은 것이라 그 속에서 지독한 슬픔과 기쁨을 끝없이 오갈 수밖에 없어, 그는 흘러넘쳐 곳곳을 적시는 그것을 도저히 틀어막을 수 없었다. 광명의 허울 아래 여태 단 하나의 빛을, 오로지 자신만이 쥘 수 있는 불씨를 바라던 어두운 마음의 밑바닥까지 헤집어 놓은 것은 그 볼품없는 심지에 불을 붙여주셨던 당신이므로.

 “로드께서는 정말…… 제가 없어도 괜찮으십니까?”

이 순간만큼은 제 눈동자에 비칠 진심을 보아주시기를 원했으나, 이제는 토해낸 진심에 대한 반응을 마주하기가 두려워 요한이 먼저 시선을 떨어뜨렸다. 내가 바라는 그대는 이리 어리석은 마음을 고하는 요한이 아니라는 말을 들으려고, 그대가 내게 맹세할 것은 연정이 아니라 충심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 찾아와 결국 헛된 진실만을 늘어놓고 말았으나 정작 바라던 대답을 듣기는 두려웠다. 꺾으라시면 꺾을 것이나 언제까지나 변치 않는 충성만을 바치겠다, 그 말로 이 촌극을 마무리해야 했지만 무서웠다. 사랑하는 마음을 돌려받지 못 하는 일 따위, 지금껏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일인데도. 그조차도 제게는 과분한 경험일 텐데도 그랬다.

곧장 답이 돌아오지 않아 다행일까. 그러나 요한은 그 정적조차 두려워, 여쭈고자 한 것을 묻고서 답도 듣지 않은 채로 하려던 말을 이어갔다. 여전히 그분의 눈은 바라볼 수 없었다.

 “…저는 괜찮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쭌 것입니다.”

 “……”

 “저는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로드.”

시야가 흐려지려 해 입술을 깨물었다. 눈을 마주하기가 두렵다는 것을 못난 얼굴을 보일 수 없다는 핑계로 가렸다. 요한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는, 로드께서 저를 침실로 부르신 그날… 그저 로드라서 따른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라서 따른 것입니다.”

 “요…”

 “그대께서 나를 부르고, 안아주기를 청하고, 이야기를 들려달라 청하시어…”

 “……”

 “…불경한 마음을 수없이 밟아 누르며 감히 당신을 끌어안은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무언가 방울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로드가 아니었다. 요한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축축한 것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러나 이 말만은 그 눈을 보고 전해야 했다. 그 마음에까지 새겨넣지는 못하더라도.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로드의 얼굴이 수채물감이 번진 것처럼 흐려졌다. 눈물 때문이었지만 미동도 할 수 없었다. 마음을 토해내기만 했을 뿐인데 존재가 소모된 것 같다. 그러나 아직 해야 할 말이 남아있었다. 자신이 여기 온 이유는 사랑을 고하고 그 마음을 받아달라 청하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심지조차 남지 않아 오로지 연정만이 자리한 마음이지만 로드께서 명하신다면, 세상을 향한 충성과 사람을 향한 마음만으로 그분을 따르기를 원한다고 하시면 베어낸 연정 위에 다시금 충의의 광명을 되찾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요한 테일드가 입을 열었다.

 “…로드와 함께 보냈던 밤들이 자꾸만 생각납니다. 첫날 나를 토닥여주시던 당신의 손길, 수마에 잠기시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달라시던 목소리, 그때가 아니었으면 결코 듣지 못했을 당신의 이야기가 뇌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순간도 내 것이었던 적이 없는데도…”

 “……”

 “…한순간에 박탈당한 기분이 듭니다. 불경하게도.”

로드의 눈이 커졌다. 눈물을 보이고 나서야 저를 피하지 않는 요한의 얼굴이 무척 낯선데, 어딘가 익숙하게도 느껴졌다. 사로잡힌 듯 바라보고 있자 그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냈다. 온 힘을 다해 쥐어짜 내듯.

 “그래서 저는 괜찮지 않습니다. 하지만 품어서는 안 될 감정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다시 웃었다. 그러나 미소 아닌 미소라는 걸, 로드는 알고 있었다.

 “이 감정 때문에 저는 늘 로드께 진실할 수 없었으니까요.”

 “……”

 “로드께서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가장 소중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제게 로드보다 저 자신을 더 우선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

 “저는 저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니까요. 늘 스스로를 우선하라는 말씀에 고개를 숙였지만… 사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니…”

…그러니 그 마음을 끊어내겠다는, 당신께서 바라는 사람이 되는 것을 막고 충족되지 못한 갈망에 스스로를 연소하게 하는 이 감정을 베어달라는 마지막 말은 자비로운 칼날 대신 부드러운 입술에 삼켜졌다. 눈물길이 나 볼품없는 뺨을 감싸 쥔 손, 따뜻하게 겹쳐진 입술이 현실감이 없어 요한은 물기 어린 눈조차 감지 못했다. 여전히 흐린 시야에 들어오는 로드의 감은 눈이 애끓는 마음이 만들어낸 환시가 아닐까 싶었다.

이미 알고 있는 온기가 아니었다면 그 입술이 떨어지기까지 그것을 붙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입술에 닿는 메마른 숨결이 불면의 밤을 채우던 그것임을 기억해낸 순간, 요한은 로드의 몸을 끌어안았다. 누가 먼저 벌린 건지 모를 입술 사이로 혀와 숨결이 뒤섞이고 사랑의 종언을 고하며 일부러 찢어 흩어낸 감정의 조각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잠든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저절로 시선이 굴러떨어지는 곳이 있었다. 도톰한 붉은 입술에 손끝을 대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도 그 몸을 놓을 수는 없어, 기어이 시선으로 입술을 탐하던 밤이 있었다. 늘 존엄한 언어만을 담던 입술이 두려운 게 없었던 시절에 대해 속삭일 때마다 이 목소리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로드의 입술이, 지금 제게 닿고 있었다.

 “…하……”

입맞춤이 끝나고 내뱉은 숨결에 열기가 스며있었다. 그러나 입술이 떨어지고도 로드를 놓지 못한 요한은 저와 마찬가지로 축축한 눈동자를 한 그녀를 보고 숨을 멈췄다. 맞닿은 몸에서 느껴지는 맥동이 자신만의 것은 아니었다.

 “…미안해, 요한.”

붉어진 눈가를 매만지는 손길이 다정했다. 분명 눈을 마주 보고 있는데도, 제품에서 잠드시던 그 밤에만 듣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입술에서 퍼져나간 열기마저 잊게 만드는 목소리. 요한이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대처럼 솔직히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이렇게라도 답을 하지 않으면,”

 “……”

 “나는 괜찮은 거라고 생각할까 봐…”

 “……그 말씀은…”

그녀가 그의 뺨에 손을 갖다 대었다.

 “경이 아니면 소용없을 거라고 했잖아.”

 “……”

 “그 마음은 알아주지도 못하고, 멋대로 필요로 하고, 그대의 다정함을 휘둘렀지. 나를 향하는 시선이 무척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리 여겨서는 안 될 것 같았어. 그대의 삶에 있어서 내 역할은 그대를 세상 밖으로 이끌고,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고, 옳다고 여기는 가치를 좇아 내 힘이 되어주기를 부탁하는 데서 끝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로드…”

 “하지만 종종 경이 자기 자신보다 나를 더 우선시하는 게 느껴지면… 한 침대에서 격의 없는 온기를 나눠주고, 무척 소중한 이를 대하듯 나를 끌어안으면,”

로드가 웃었다. 검은 눈동자는 빛이 일렁거렸다.

 “무척 행복했지. 다른 모든 건 다 잊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요한이 그녀를 품에서 놓았다. 뺨을 어루만지는 손 위에 제 손을 겹친다. 열화가 지나간 눈동자에 옅은 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어서 다음 말을 들려주시라고, 그가 눈으로 말한다.

 “그렇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내 생각, 내 마음을 강요하는 건 네게 선택지가 없었던 그때로 끝내야 하는 거잖아.”

 “……”

 “그대가 주는 것만큼 돌려주지도 못하면서, 그리고 돌려주지도 못할 텐데 계속해서 바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 입으로는 자신을 우선하라 말하면서 언제고 나를 더 소중히 여겨주는 너를 당연시 했어.”

 “로드.”

 “이대로는 내가 너를 망칠 것 같았어, 요한.”

 “……”

 “그래서 너를 밀어냈어. 미안해.”

검은 눈동자 가득 요한의 얼굴만이 가득했다. 습기가 돌던 눈동자에 반짝이는 막이 생기고 기어이 방울져 눈꼬리에 고였다. 진심을 말하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나. 사실은 아주 오래전에 움튼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게 두려워 외면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름답지만 연약한 인간의 마음은, 이름 붙인 감정대로 기울곤 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자신을 구한 것이 그녀라 말하는 남자에게 낯설고 무거운 감정의 부채를 지워주고 싶지 않았다. 그가 저를 보는 눈빛이 달고 그 목소리가 다정했으나 욕심을 내서는 안 되었다. 그리하여 먼저 선을 그은 주제에, 결국은 그 욕심을 참지 못해 그 마음을 휘둘러 생채기를 내고 말았지만.

하지만 이 상냥한 남자는, 결국 그를 연인처럼 그리는 자신을 인정하고 잠 못 이루던 밤을 건너와 어떤 말을 했는가. 그대가 없어 괜찮지 않은 건 자신뿐만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이는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자신이 입술로 삼켜버려 듣지 못한 말은 아마도… 자신이 외는 경구, 누구보다 그대 자신을 우선시하라는 그 말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이 마음을 꺾어주시라는 것이었겠지. 요한 테일드는 그런 남자였다. 스스로를 우선시하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 결국은 스스로의 마음을 꺾으려 하는. 누구도 할 수 없을 사랑과 헌신을 바치고, 자신보다 타인을 더 사랑하는 그런 기사.

 “하지만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요한.”

그렇기에 부정했으나 진실에는 진실로 답을 하고 싶었다.

 “나도 그대를 사랑해도 될까.”

 “로드.”

 “나도 너를… 사랑하고 싶어.”

일관성 없는 호칭과 말투가 저답지 않았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자의 고백으로 어지러워진 마음은 자신다움이라는, 은연중에 가졌던 그런 강박마저 벗겨내고 오롯이 감정만을 드러내게 했다. 그래서 마지막 말을 잣는 목소리에는 떨림이 일었다. 요한이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을 훑어냈다. 흐르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로드께서는 저를 망치신 것이 아닙니다.”

품에 안아 속삭일 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웃지 않는 얼굴이었으나 낯설지 않았다. 그는 로드가 무척 좋아하는 따뜻한 빛을 그 눈과 목소리에 섞어내고 있었다.

 “그저 제가… 저 자신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기를 택했을 뿐입니다.”

 “요한…”

 “그게 가장 저다운 모습이니까요. 로드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는 당신을 저 자신보다 더 사랑하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요한이 로드의 한 손을 움켜쥐었다. 조심스레 들어 올려 손등에 살며시 입술을 누른다.

 “로드. 저는 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당신이 사랑한 나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

 “그러니 당신을 사랑하는 요한 테일드가 당신이 바라시는 모습이라면…”

그러나 경건한 입맞춤 뒤에 맹세하듯 올려다보는 시선에는 붉은빛 감정만이 가득해서,

 “…언제까지나, 변치 않는 사랑을 바치겠습니다.”

그녀는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눈물이 나는 건지 모를 얼굴을 숨기려 그저 사랑하는 남자의 품에 파고드는 것밖에는, 다른 답을 돌려줄 수 없었다. 하지만 요한에게 대답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고했다.

 “사랑합니다, 로드.”

이것으로 족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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